[사설] 어떤 권력에 아부한다고 ‘김명수 거짓말’ 늑장 수사했나
검찰이 임성근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하고 국회에 거짓으로 해명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에게 소환을 통보했다. 그가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 등으로 고발된 지 3년 5개월 만이다. 김 전 대법원장은 문재인 정권 때 법관 탄핵을 추진한 민주당에 잘 보이려고 탄핵 대상으로 지목된 임 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해 놓고 국회에서 문제가 되자 이를 부인하는 취지의 문서를 국회에 보냈다. 이후 녹취록이 나와 거짓말이 들통났다. 이미 사실이 다 드러나 오래 걸릴 게 없는 사건이다. 그런데 이제야 소환 조사를 통보했다. 심각한 수사 지연이다.
검찰 내부에선 현직 대법원장 조사에 대한 부담 때문에 수사가 늦어졌다는 말이 나온다. 사실 김 전 대법원장은 거짓말이 드러났을 때 바로 사퇴했어야 한다. 거짓말을 가려내는 사법부의 수장이 거짓말을 하고도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법적인 문제를 떠나 파렴치한 일이다. 그런데 김 전 대법원장이 버티고, 검찰이 눈치를 보면서 수사가 지연됐다는 것이다. 실제 문재인 정권 시절 검찰은 사실상 수사를 뭉갰다. 그렇다면 작년 9월 김 전 대법원장이 퇴임한 후에라도 수사를 본격화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의 검찰도 무슨 이유인지 수사를 늦추다 퇴임 10개월이 지나서야 소환 통보를 한 것이다.
이런 일이 한둘이 아니다. 검찰이 최근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 부부에게 소환을 통보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도 수사에 시간이 걸릴 게 없다. 그런데 검찰은 경찰에서 사건을 넘겨받고 거의 2년 동안 뭉개다 민주당이 이 전 대표 관련 의혹을 수사한 검사들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발의한 지 이틀 만에 소환 통보를 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도 시간을 끌다 문제를 키웠다.
검찰은 수사 지연으로 김 전 대법원장의 거짓말 수사는 마지못해 한다는 인상을 주고, 이 전 대표 부부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은 마치 민주당과 검찰의 정치 싸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런 수사는 검찰총장 지시나 허락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검찰총장은 최근 ‘법은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 지연은 어떤 권력에 아부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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