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집값 하락론자’를 바보로 만든 정부
“잔등락” 우기다 대응 실기… ‘정부 실패’가 시장 흐름 바꿔
서울 아파트 값이 연일 폭등세다.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던 ‘집값 하락론자’들이 졸지에 ‘바보’가 됐다. 한동안 부동산 전망 담론장에서 대세를 장악했던 집값 하락론자들의 주장엔 논리적 근거가 있었다. 25년 치 소득을 모아야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서울 집값 수준, 경기 침체와 소득의 정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에 따른 건설 경기 추락, 고금리와 공사비 급등이 낳은 아파트 분양 시장 침체, 청년층의 영끌 빚투에 따른 주택 실수요의 소진 등등. 작년의 집값 반등 움직임은 정부의 정책성 저금리 주택 대출 지원이 만든 ‘데드 캣 바운스’(dead cat bounce·가격 급락 뒤 일시 회복)이고, 2차 하락이 시작될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가졌다.
그런데 3월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급증하며 가격도 뛰기 시작했다. 서울 아파트 값 반등은 빌라 사기 사태 여파로 아파트 전세 수요 급증, 전셋값 상승이 촉발한 아파트 매수세 확산, 작년·재작년 인허가 절벽과 공사비 상승에 따른 신축 아파트 공급 부족, 금리 하락으로 인한 집값 상승 기대 심리 확산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여기에 서울 집값은 더 오를 것이란 기대 심리가 지방 부자들의 서울 원정 투자, 갭 투자(전세를 낀 주택 매입)를 자극하고 있다. 5월 중 서울 아파트 매수자 5명 중 1명이 지방 거주자이고, 10채 중 4채는 갭 투자였다. 1주택자들까지 ‘똘똘한 한 채’ 갈아타기에 가세하자 서울 대장주 아파트 값이 연일 신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반면 지방 주택 시장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주택 시장의 초(超)양극화가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집값 하락론자들의 실수는 ‘정부 실패’ 가능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지난 5년간 집값이 너무 올라 하향 안정세가 더 지속돼야 한다”(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 “강남 집값을 잡아야 서울 전체 집값을 잡을 수 있다”(오세훈 서울시장)던 정책 당국자의 공언과 정부의 실제 정책 행보는 달랐다. 정부는 부동산 경착륙을 막는다면서 특례보금자리론, 신생아특례대출 등 저금리 주택 대출을 연 30조~40조원씩 지원하며 주택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7월 시행 예정이던 2금융권 주택 대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9월로 미뤄 ‘정부가 집값을 잡을 생각이 없다’는 신호를 줬다. 부실 부동산 PF 정리를 계속 미루며, 신규 택지 공급 중단 사태를 방치했다. 국토부 장관은 종합부동산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말해 ‘똘똘한 한 채’ 투자 수요를 자극했다. 일련의 엇박자 정책 행보는 ‘정부가 부동산 PF, 미분양 아파트 문제 해결을 위해 집값 상승을 바라고 있다’는 해석을 낳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가 정말 ‘집값 하향’ 의지가 있었다면, 작은 불씨가 큰불이 되기 전에 조기 진화에 나서야 했다. 2022년 하반기 빌라 전세 사기 사건 이후 아파트로 전세 수요가 몰리며 전세난이 발생했을 때 다주택자 규제를 풀어 전세 신규 매물을 늘리는 조치를 해야 했다. ‘부자 감세’ 프레임이 무서워 정부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외면하는 사이, ‘전세난→아파트 전세가 급등→아파트 매매가 상승’ 흐름이 만들어졌다. 그래도 국토부 장관은 “지엽적, 일시적 잔반등”이라고 강변했다. 서울발 집값 급등이 수도권까지 번지자, 정부는 10개월 만에 부동산 관계 장관 회의를 열고 ‘주택 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3기 신도시 공급 방안을 되풀이한 내용이었다. 이런 맹탕 대책으로 집값 급등세를 잡을 수 있을까. 부동산 정책 당국자에게 문제 해결을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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