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인제의 기적

남궁창성 2024. 7. 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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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숙은 장수 집안의 후예다. 말 타기와 활쏘기를 잘해 무과에 급제했다. 벼슬길은 막히고 말았지만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위해 죽으려는 뜻은 선대의 위업을 이을 만 하여 사대부들에게 부끄러울 게 없었다. 아! 영숙은 어찌하여 온 식솔을 이끌고 예맥(濊貊)의 땅으로 가려 하는가? 전에 영숙은 나를 위해 금천 연암(燕巖) 골짜기에서 집터를 봐준 일이 있다. 산이 깊고 길은 험해 사람 하나 만날 수 없었다. 부싯돌을 치자 불이 번졌다. 꿩이 푸드득 날고 새끼 노루가 깜짝 놀라 튀었다. 그는 말했다. '백 년도 못 살 인생인데 어찌 답답하게 나무와 바위뿐인 곳에 살며 조밥 먹고 꿩, 토끼나 좇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영숙은 기린(麒麟)에서 살겠다고 한다. 송아지를 업고 들어가 그걸 키워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소금도 메주도 없다. 아가위와 돌배로 장을 만들어 먹겠다고 한다. 험준하고 궁벽하기가 연암 골짜기보다 훨씬 심하니 비교나 할 일인가? 나는 갈림길에서 망설이며 거취를 정하지 못하거늘 감히 떠나는 영숙을 막을 수 있겠는가. 그의 뜻을 장하게 여길지언정 그의 곤궁함을 슬퍼하지 않으련다.' 영숙은 백동수(1743~1816년)의 자(字)다.

250년 전 연암의 송서에 등장하는 인제의 흑백 사진과 오늘날 기적을 만들어 가는 인제의 컬러 사진이 선명한 대조를 이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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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숙은 장수 집안의 후예다. 말 타기와 활쏘기를 잘해 무과에 급제했다. 벼슬길은 막히고 말았지만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위해 죽으려는 뜻은 선대의 위업을 이을 만 하여 사대부들에게 부끄러울 게 없었다. 아! 영숙은 어찌하여 온 식솔을 이끌고 예맥(濊貊)의 땅으로 가려 하는가?

전에 영숙은 나를 위해 금천 연암(燕巖) 골짜기에서 집터를 봐준 일이 있다. 산이 깊고 길은 험해 사람 하나 만날 수 없었다. 부싯돌을 치자 불이 번졌다. 꿩이 푸드득 날고 새끼 노루가 깜짝 놀라 튀었다. 그는 말했다. ‘백 년도 못 살 인생인데 어찌 답답하게 나무와 바위뿐인 곳에 살며 조밥 먹고 꿩, 토끼나 좇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영숙은 기린(麒麟)에서 살겠다고 한다. 송아지를 업고 들어가 그걸 키워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소금도 메주도 없다. 아가위와 돌배로 장을 만들어 먹겠다고 한다. 험준하고 궁벽하기가 연암 골짜기보다 훨씬 심하니 비교나 할 일인가?

나는 갈림길에서 망설이며 거취를 정하지 못하거늘 감히 떠나는 영숙을 막을 수 있겠는가. 그의 뜻을 장하게 여길지언정 그의 곤궁함을 슬퍼하지 않으련다.’

영숙은 백동수(1743~1816년)의 자(字)다. 예맥은 강원이요 기린은 인제 기린이다. 연암 박지원(1737~1805년) 선생이 1773년 한양을 떠나 기린 골짜기로 들어가는 영숙을 위해 써준 송서(送序)다.

인구 3만2000여 명인 인제군에 1년 동안 10만명을 웃도는 사람들이 다녀간 곳이 있다. ‘기적의 도서관’이다. 지난해 6월 ‘시간을 넘어 무한한 상상’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문을 열었다. 전국 135개 단체에서 2500여 명이 견학도 다녀갔다고 한다. 작은 도서관이 이룩한 위대한 기적이다.

250년 전 연암의 송서에 등장하는 인제의 흑백 사진과 오늘날 기적을 만들어 가는 인제의 컬러 사진이 선명한 대조를 이뤄 반갑다. 휴가철을 맞아 인제의 자연과 역사를 품은 ‘기적의 도서관’에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가시길 바란다.

남궁창성 미디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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