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Energy 지정학] 의외의 원전 강국 체코… 국민 70%의 적극 찬성 덕분이다

최준영·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4. 7. 2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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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두코바니 원전 단지. 현재 원전 4기를 가동 중이며 2기를 추가하는 사업을 한수원이 수주했다. 사진=체코전력공사

지난 18일 체코에서 반가운 원자력 발전소 수주 소식이 전해졌다. 수도 프라하에서 동남쪽으로 약 170㎞ 떨어진 두코바니 지역에 건설될 1000㎿급 2기의 원자로를 총 4000억 크루나(약 24조원)에 수주했다는 내용이었다. 2029년 착공에 들어가 2036년 시운전을 시작해 2038년부터 상업운전에 들어간다는 것이 체코 정부의 계획이다.

많은 이들이 체코가 처음으로 원자력 발전을 도입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번에 우리나라가 수주한 원전이 설치될 두코바니 지역에는 이미 4기의 원자로가 가동 중이다. 프라하 남쪽 100㎞에 위치한 테믈린의 2기까지 포함하면 체코는 이미 6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40년 가까이 운영해 오고 있다.

그래픽=이철원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체코는 전체 전력 생산의 40%를 원자력 발전이 담당하고 있는 원전 강국이다. 체코뿐 아니라 적지 않은 동유럽 국가들에서 원전 비율이 30%인 우리나라보다 높다. 과거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체코와 한 나라였다가 분리된 슬로바키아의 경우 원전 비율은 61.3%에 달하며, 헝가리의 경우도 48.8%에 이르고 있다. 체코는 2022년 총 84.8조Wh의 전력을 생산했는데 이 가운데 35.7%에 달하는 30.3조Wh를 주변 국가인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폴란드에 수출하고 있는 전력 수출 강국이기도 하다. 내륙국가지만 많은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체코를 포함한 동유럽 국가들은 풍부한 석탄 매장량으로 석탄 화력발전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이를 점차 축소해야 하자 원자력으로 이를 대체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제조업 비율을 높이기를 희망하고 있는 이 국가들로서는 안정적으로 대량의 전력을 확보하는 데 재생 에너지보다 원자력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체코의 제조업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폴크스바겐그룹 산하 브랜드 가운데 하나인 스코다(SKODA)의 본거지인 체코의 경우 자동차가 전체 수출의 24%, 전체 고용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성장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체코 정부는 이미 10년 전에 장기 에너지 전략을 통해 원전 비중을 높이기로 결정했다. 2015년 확정된 에너지 전략에 따르면 전력 생산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율을 2040년까지 46~58%로 높이기로 했고, 이번에 우리나라가 수주한 2기의 원자로는 이런 계획에 따른 것이다.

그래픽=이철원

체코 정부가 이렇게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이기로 선택할 수 있는 데는 체코 국민의 지지가 큰 역할을 한다. 현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체코 국민 가운데 70%는 원자력 발전을 확대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 비율이 64.8%로서 유럽에서 원전 비율이 가장 높은 프랑스보다도 원전 확대에 찬성하는 국민이 더 많다. 체코가 유럽 최고의 친원자력 국가라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의 위험성이 체감되고 에너지 자급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원자력은 체코 국민에게 미래를 위한 중요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체코 정부는 장기적인 원자력 발전 확대를 위해 사용후 핵연료 처분 시설 건설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미 2020년에 4개 후보지를 선정했으며, 이 가운데 한 곳을 2025년에 최종 처분장 부지로 확정하고 2050년 이후 건설을 시작해 2065년부터는 사용후 핵연료를 이곳에 저장한다는 일정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처분장 부지 선정은 고사하고 관련 법률 제정조차 못하고 있는 우리와 비교해보면 체코는 진정한 원전 강국인 셈이다.

체코는 태생적으로 원전과 인연이 깊다. 체코의 보헤미안 지역은 세계 평균보다 최대 20배 많은 우라늄이 토양에 포함되어 있고, 유럽에서 최초로 우라늄을 대규모로 채굴하기 시작한 나라이기도 하다. ‘야치모프’라는 지역에서 1840년대부터 우라늄을 채굴해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공급한 나라가 체코다. 핵 분열의 원리를 모르던 시기 우라늄의 용도는 유리 착색제였다. 우라늄이 포함된 유리는 은은한 초록색 빛을 띠며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난다. 폴로늄, 라듐 등을 발견한 퀴리 부인의 실험실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광물질도 체코에서 채굴된 것이었다.

체코의 우라늄은 20세기 들어 강대국의 다툼 대상이 되었다. 1940년 독일이 야치모프 우라늄 매장지를 점령했고, 1945년 9월에는 소련군이 광산을 장악했다. 다급하게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던 소련은 야치모프 광산에서 생산되는 우라늄 전량을 소련으로 보내도록 압박했다. 결국 그해 11월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생산된 우라늄 대부분을 소련에 공급한다는 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래도 전체 생산량의 10%는 자체적으로 보유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공학이 발달했던 체코슬로바키아는 1940년대 후반부터 원자력과 관련한 독자적인 시설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 1957년 9월 실험용 원자로에서 핵분열을 시작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1960년대 말에는 가스냉각중수로 방식의 A-1 원자로를 자체 제작해 가동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안전성 및 전력 대량생산의 한계로 체코슬로바키아는 소련의 가압형경수로(VVER) 건설 제안을 받아들여 두코바니 지역에 4기의 원자로를 건설해 1985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우리나라가 수주한 원전이 계획대로 2038년부터 상업운전에 들어가면 냉전 시기 건설된 구소련의 원자로와 21세기 대한민국 원자로가 공존하는 이색적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체코는 장기적인 원전 확대 정책의 수립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건설 및 탈원전 입장을 취하던 EU(유럽 연합)에 향한 설득을 병행하면서 원자력을 자국의 에너지의 근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경제발전과 에너지 안보라는 목표를 달성해 가고 있다. 다른 나라의 정책을 따라 하기에 급급한 우리에게 자국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독자적인 에너지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는 체코의 모습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프랑스, 20년 넘게 신규 원전 못 지으며 인력난… 용접공 못 구해 美서 데려와

체코 원전 수주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한수원과 끝까지 경쟁했던 곳은 프랑스전력공사(EDF)였다. 한국전력과 비슷한 국영 전력회사다.

프랑스는 체코 원전 수주를 위해 지난 3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프라하를 방문했다. 또한 EU(유럽연합) 차원에서 원자력이 녹색 에너지로 인정받아 자금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EDF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한수원과의 두 번째 경쟁에서도 패배했다. 체코 원전 수주에 실패함으로써 EDF는 프랑스 국내의 원전을 제외하고는 해외에서의 신규 계약이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EDF의 패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공기 및 예산 준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 것이 핵심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EDF가 공사를 마무리한 프랑스의 플라망빌 3호기의 경우 원래 준공 시기가 2012년이었다. 공기(工期)가 12년이나 지연된 것이다. 그로 인해 건설 비용은 당초보다 99억유로(약 14조8600억원)나 초과됐다.

한때 세계 원자력 업계를 호령하던 EDF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 이후 20년 넘게 국내에서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못한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대규모 인력 퇴직 사태로 인해 노하우 상실과 기술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 2022년 프랑스 원전에서 발견된 파이프 누수 문제를 해결할 용접공을 구할 수 없어 결국 미국에서 초빙해오기도 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프랑스 원전 업계에서는 모두 22만명의 인력이 고령화 인력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신규 인력 채용이 쉽지 않다. 젊은 층은 언론을 통해 주목받고 있는 재생에너지 분야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원자력 업계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발주와 수주를 통해 지속적으로 인력이 유입되고 산업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프랑스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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