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힐빌리의 노래’는 脫자유주의의 경전을 꿈꾸는가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2024. 7. 24.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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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역사학자 스테판 링크는 그의 저서 ‘글로벌 포드주의 총력전’에서 20세기 자본주의 역사에 관한 신선한 재해석을 들려준다. 컨베이어 벨트와 흐름 생산으로 대표되는 생산 양식인 포드주의는 대량생산 체제와 그에 따른 대중사회의 등장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어 20세기 중엽 자본주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다. 하지만 포드주의는 자본주의와 함께 으레 따라오는 자유주의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링크에 따르면 포드주의는 오히려 자유주의를 향한 주변부의 반란으로서 등장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야기는 미국 중서부에서 시작한다. 이곳은 포드주의 거대 공장들이 건설되면서 미국 제조업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지역이다. 오늘날에는 그 공장들이 전부 녹이 슬어 폐허가 되었다고 ‘러스트벨트’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링크는 이 지역 노동자와 엔지니어들의 문화인 ‘생산자 포퓰리즘’에 주목한다. 중서부 엔지니어 사이에서는 뉴욕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들이 자유롭게 생산 요소를 순환시키며 이윤을 축적하는 동안 실제 혁신을 이끄는 생산자들은 그들에게 종속된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헨리 포드는 이런 불만을 누구보다 크게 느끼는 기업가로서, 땀 흘리며 기계를 만지는 사람들이 금융가들을 이겨내야만 한다고 주장했고, 자신만의 생산 양식인 포드주의를 탄생시켰다. 그의 철학은 생산과 경영에 그치지 않았다. 포드에 따르면 기업 경영은 사회적 미덕에 종속되어야 하고,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은 기업 문화 속에서 더 도덕적 존재로 거듭나게 해야만 했다.

개인보다 공동체, 자유보다 도덕을 내세운 포드의 사상은 곧바로 미국 바깥에서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1930년대는 독일, 소련, 일본 등의 유라시아 강대국들이 앞다투어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신질서를 꿈꾸었던 시대였다. 그리고 그들은 가장 앞선 산업 국가로서 미국을 항상 의식했는데, 바로 그 미국에서 자신들의 반자유주의 이념과 부합하는 최첨단 혁신이 펼쳐지고 있었다. 당대 일본 경제학자 중 하나는 포드의 저작을 ‘근대 사회의 성경’이라며 찬사를 보냈고, 소련의 한 전기 작가는 ‘자본주의가 사라진 이후에도 포드라는 이름만은 기억될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훗날 히틀러와 나치에 영향을 미치게 될 바이마르 독일의 우익 사상가들도 포드주의의 충격을 빠르게 흡수했다. ‘자유의 제국’ 미국이 탈자유주의적 영감의 원천으로 변모한 것이다.

역사를 현재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동원하는 일은 견강부회로 흐를 때가 많다. 하지만 2024년의 미국에서 100년 전 포드주의를 발신하는 미국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기란 어렵다. 캘리포니아와 뉴욕의 자유주의에 중서부와 애팔래치아, 남부의 포퓰리스트들은 자신들이 진짜 미국인이라며 엘리트를 향한 저항을 촉구한다. 러시아의 푸틴이나 헝가리의 오르반과 같은 반자유주의 지도자들이 미국의 우익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고, 반대로 유라시아의 반자유주의자들은 미국 자유주의의 위기를 매일같이 지적한다. 일론 머스크와 같은 기업가들은 헨리 포드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에 조소를 보낸다.

게다가 미국의 탈자유주의 경향은 100년 전보다 지금 더 정치적 힘이 강하다. 100년 전의 위기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과 전후 질서 구축으로 봉합되었고, 포드는 뉴딜을 언제나 경멸했다. 하지만 현재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JD 밴스와 같은 사람은 어떤가. 그와 친밀한 사상가 패트릭 드닌은 작년에 ‘체제 교체: 탈자유주의 미래를 향하여’와 같은 저작을 집필하기도 했다. 트럼프와 밴스가 올해 선거에서 승리할지 여전히 장담할 수 없지만, 미국 내의 탈자유주의는 선거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더 강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미국의 탈자유주의 도전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과 그에 따른 한미 동맹과 동아시아 지정학의 향방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모방의 원천이 되어주는 미국에서, 우리가 생각지 못한 흐름이 폭발했을 때 느끼게 될 정신적 충격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힐빌리의 노래’가 ‘현대 사회의 성경’이 되었을 때 한국 사회가 새로운 믿음을 찾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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