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178] It’s time to remember who you are
“신성한 장소입니다. 무슬림과 힌두교도가 어울리는 곳이기 때문이죠(This is a sacred space because some of us here are Muslim. Some of us are Hindu).”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와 함께 시합이 시작된다. 이곳은 종교도 인종도 상관없는 불법 지하 격투장. 인도인 청년 키드는 원숭이 가면을 쓰고 혈투를 벌인다. 하지만 오늘도 역부족이라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가까스로 매값만 몇 푼 벌어간다. 데브 파델의 연출 데뷔작 ‘몽키맨(Monkey Man∙2024∙사진)’의 한 장면이다.
키드는 원숭이 가면을 보며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듣던 원숭이 신 ‘하누만’ 이야기를 떠올린다. “하누만은 하늘로 뛰어올라 곧장 그 과일로 향했단다. 그런데 그건 망고가 아니라 뜨거운 태양이었지(Hanuman took to the skies. Straight towards that fruit. That it wasn’t a mango but the burning, hot sun).” 욕심을 부리던 하누만은 신들에게 힘을 빼앗기고 땅으로 추락하지만 무적의 하누만 전설은 키드의 뇌리에 깊이 박힌다.
키드가 지하 격투장에서 실력을 쌓으며 돈을 모으는 이유는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서다. 키드의 어머니가 빈민가를 소탕하던 부패한 라나 싱 경찰청장에게 살해당한 후로 키드의 인생은 오로지 복수만을 향해 있다. 드디어 기회를 잡아 복수하려던 순간, 키드는 라나 싱의 힘 앞에 무참히 무너진다.
소수자들로 이루어진 비밀스러운 집단 ‘히즈라’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키드. 소수자란 이유로 차별과 박해를 당하지만 이들도 전에는 용맹한 전사였다. 히즈라의 곁에서 뼈를 깎으며 실력을 쌓은 키드는 다시 한번 복수의 칼을 꺼낸다. 그리고 박해받는 히즈라들에게 편지를 남긴다. “당신들이 누군지 기억할 때가 됐습니다.(It’s time to remember who you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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