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질병[이은화의 미술시간]〈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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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노인이 기다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다.
가장자리에 앉은 백발의 두 노인은 떠날 준비가 된 듯, 두 손을 모으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두 번째와 네 번째 노인 역시 같은 포즈를 취했지만 시선은 약간 아래를 향했다.
가장 슬퍼 보이는 건 가운데 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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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노인이 기다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다. 가운데 남자만 고개를 숙이고 있고 네 남자의 얼굴은 정면을 향했다. 마치 수도사처럼 정갈한 하얀 가운을 입은 이들은 대체 누구고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페르디난트 호들러는 19세기 스위스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대칭적 구도와 반복을 특징으로 하는 ‘병렬주의’ 화법을 개발해 명성을 얻었다. 39세 때 그린 ‘삶의 피로(1892년·사진)’는 병렬주의를 보여주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림 속에는 비슷한 옷차림과 포즈를 취한 노인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같은 벤치에 앉았지만 서로 어떤 상호 작용도 없고, 하나같이 삶에 지친 듯한 표정이다. 이들은 특정 인물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삶의 피로와 허무, 인간의 고독과 소외를 상징한다. 한때는 건장한 몸으로 생기 넘치는 삶을 살았을 노인들은 이제 노쇠한 몸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가장자리에 앉은 백발의 두 노인은 떠날 준비가 된 듯, 두 손을 모으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마치 저승사자가 그들 앞에 서 있는 듯하다. 두 번째와 네 번째 노인 역시 같은 포즈를 취했지만 시선은 약간 아래를 향했다. 아마도 아직은 삶의 미련이 있는 듯하다. 가장 슬퍼 보이는 건 가운데 노인이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상체와 양다리를 드러냈고, 두 팔도 아래로 떨어뜨렸다. 짧은 갈색 머리라서 상대적으로 가장 젊어 보이지만, 가장 지치고 힘겨워 보인다. 그 원인이 질병인지 삶 자체인지는 알 수 없다.
호들러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두 동생을 잃은 뒤 죽음과 고통이란 단어를 평생 안고 살았다. 이 그림을 그릴 무렵에는 죽음이나 질병을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기로 결심했던 듯하다. 화면 뒤쪽 가장자리에 나무 두 그루를 대칭적으로 그려 넣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라고 믿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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