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정성을 다한 건축, ‘보통의 기준’을 높이다[김대균의 건축의 미래]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2024. 7. 24.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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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주변 환경 고려한 집… 그 정성이 품질에 품위 더해
지역-일상-자연을 중심에 둔 북유럽 디자인이 특별한 이유
품격은 책임감과 긍지에서 나온다
1890년 지어진 건물을 고쳐 2018년 개관한 서울 중구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 김대균 대표 제공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건축의 품격을 높이는 법

일본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하라 겐야와 함께 ‘하우스비전’이라는 전시회를 겸한 연구회에 몇 년에 걸쳐 참여했다. 연구회에서 그가 남긴 “선진국은 ‘보통의 기준이 높다’고 생각한다”는 말은 꽤 시간이 지난 요즘도 가끔 떠오른다. 디자인이나 건축에서 ‘품질’을 높인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겠는데 ‘보통의 기준’을 높이는 것은 무엇일까.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행위는 연구를 통해 기술과 기능을 높이고 시각적으로 형태를 아름답게 만드는 행위라 생각한다.》

동시에 ‘질’을 높인다는 것은 제품을 쓰는 사람이 느끼는 경험과 감정까지 챙기는 것이다. 제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정성스럽게 가다듬는 것을 뜻하는 ‘정제’라는 단어는 독일어로 Veredelung인데, ‘사람의 품위를 높인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제품의 품질이 ‘물건’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만드는 사람과 쓰는 사람들까지 포함해 생각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말인 ‘정성(精誠)’에서도 한자 ‘精’은 가족과 내가 먹을 쌀을 씻는 마음을 뜻하고 ‘誠’은 내 말과 뜻을 이루어 내는 것을 뜻한다. 즉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가족이 먹을 쌀을 씻는 마음으로 제품과 음식, 집을 만드는 것이다. ‘정성’을 다한 사물에는 기쁨과 창조, 긍지, 존엄이 깃들고 이것이 ‘품질’을 높인다. 이런 태도는 윤리의식과 연결되기에 결국 품질을 높이는 행위는 사회적 윤리와 연결된다. 누군가를 위해 특별히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매일 스스로 정성껏 만든 물건이나 음식, 건물은 만든 나와 쓰는 사람 모두의 품위를 높인다. 이런 직업의식과 서로의 존엄은 보통의 기준을 높이는 바탕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모든 제품이나 건축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한 예로 거실에 있는 스탠드 조명은 거실의 천장등이나 벽등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식탁, 그릇, 의자, 바닥마감, 벽의 색깔까지 모든 제품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방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제품들이 모여 그 집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집들이 모여 마을과 도시의 분위기를 만든다. 그렇기에 단순히 물건만 만드는 행위와, 환경을 조성하는 관점에서 제품과 건축을 만드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매우 다른 결과를 불러온다.

북유럽 디자인 가구들로 채워진 공간.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요즘 유행하는 북유럽 디자인의 의자, 가구, 그릇, 조명 등은 편안하고 아늑하면서도 전통과 현대가 함께하는 미감을 가지고 있다. 북유럽의 주거 제품들이 각각 다른 회사에서 만들어지지만 유사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북유럽 디자인의 출발과 과정에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스웨덴 등 유럽 각국에서 귀족 중심 사회를 벗어나 시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일어난 근대 디자인운동은, 예술가들과 건축가들만 참여한 디자인 운동이 아니라 철학자, 정치가, 사업가 등 각 분야가 모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문화운동이었다. 특히 북유럽의 근대 디자인운동은 과거와의 결별이 아닌 토착 신화, 종교, 지역 등 위에 새로운 모던디자인을 받아들이고 자연, 역사, 문화, 전통, 일상을 구심점으로 새로운 생활문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문화를 구심점으로 새로운 사회디자인의 방향을 세운 것이다.

특별한 것이 아니라 늘 함께하는 자연, 역사, 전통, 일상을 디자인의 자원으로 삼은 것이 ‘보통의 기준’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또한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지켜지는 생활의 기반이 ‘집’에 있다고 생각하고, 사유 재산인 집을 사회 공통의 자본으로 인지해 생활과 사회 환경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법적 제도를 디자인과 함께 만들었다. 인간의 생활권을 기본권으로 두고 사회적 차원의 지원과 제도를 더한 것이 보통의 기준을 높인 것이다.

몇 년 전 명동성당에 있는 오래된 건물을 고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으로 조성했다. 개인적으로 종교는 없지만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담는 중요한 장소이니 모든 사람의 정성과 뜻을 모아달라고 공사 감리를 갈 때마다 성당에 가서 기도했다. 공사를 거의 마무리할 때쯤 조명 공사를 하신 분이 “자신이 했지만 조명을 참 잘한 것 같다”며 자녀를 데리고 와야겠다고 했다. 이 순간은 지금도 참 기억에 남는다. 각자가 자신이 한 일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야말로 ‘보통의 기준’을 높이는 것이다. 일에 대한 책임감과 보람은 사회를 빛나게 만든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책임감 있게 일하는 사회는 ‘보통의 기준’이 높은 사회이다. 개인의 정성과 사회적 제도와 서로의 신뢰, 책임감 등이 ‘보통의 기준’을 높일 수 있기에 선진국은 외형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신뢰하고 개개인이 책임을 다하는 태도 그 자체인 것이다. ‘보통의 기준’은 형태보다 개개인의 태도와 자연, 역사, 전통, 사회적 제도, 일상의 생활문화 사이 어디쯤에 있다.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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