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훈 "말병 걸린 한국사회…모두가 담벼락에다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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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언어의 병은 듣기가 안 된다는 것이죠. 말하는 자들만 있어요. 듣는 자가 없으니 인간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담벼락에 말하는 것과 똑같아요."
말하기는 듣기가 바탕이 된 상태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상대방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바람에 극단적 언어와 적대감이 쌓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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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우리 사회 언어의 병은 듣기가 안 된다는 것이죠. 말하는 자들만 있어요. 듣는 자가 없으니 인간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담벼락에 말하는 것과 똑같아요."
작가 김훈(76)이 요즈음 흘러가는 세상사를 보며 드는 생각 중 하나다. 최근 산문집 '허송세월'(나남)을 펴낸 그는 24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대산홀에서 열린 독자들과의 만남 행사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고민스러운 문제가 바로 "말의 문제"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말은 인간이 소통하기 위해 하는 것인데 말을 하면 할수록 인간이 단절되고 있어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도 안 믿는 세상이 돼버렸지요.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겁니다."
작가가 보기에 이 시대 한국 사회의 병환 대부분은 말에서 기인하는 '말병'이다.
그는 "국회를 보면 다 말병이 걸린 것 같다. 악다구니와 저주와 욕설이 가득하다"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말하기는 듣기가 바탕이 된 상태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상대방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바람에 극단적 언어와 적대감이 쌓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말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듣기의 바탕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정치·사회적 견해를 교양 있는 언어로 말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해요."
이날 독자들과의 만남은 최근작인 산문집 '허송세월'의 제목을 따라 '나의 허송세월과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마련됐다. 사전 참가 신청에 1천200명이 몰려 추첨 끝에 총 300여 명의 독자가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말과 언어에 대한 예리한 감각으로 글을 써온 작가는 듣기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말에 대한 불신을 끝내 떨쳐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장황한 말과 표현을 극도로 꺼려 소설이나 에세이에서 형용사나 부사를 잘 쓰지 않기로 유명한 그의 '하드보일드'(hard-boiled)한 문장은 새로 나온 산문집에서도 여전하다.
작가는 이런 맥락에서 요즘 들어서는 한음절 짜리 명사와 동사에 꽂혀 있다고 했다.
명사로는 달·별·밥·꽃·똥·산·강·물, 동사는 먹다·싸다·누다·꽂다·갈다·빻다·찧다·밀다·깎다 등이다.
그는 "우리 몸에 가장 가까운 동작이나 사물을 표현한 이런 말의 특징은 인간과 삶의 직접적 관계 속에 생긴 단어라는 것"이라며 "한음절 짜리 가장 순수하고 강력하고 원초적인 이런 언어의 영역으로 (어휘를) 넓혀가고 싶은데 뜻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행사에 대학생 딸을 데리고 왔다는 한 중년 남성이 젊은이들에게 격려의 말을 해달라고 하자 그는 "기성세대가 가난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차별·억압·독재·비리·부패 등의 문제가 생겨났다"면서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의 대부분을 우리 세대가 만들었는데 늙은 사람으로서 송구하다"고 했다.
작가는 기성세대로서 미안함을 표하면서도 "우리는 곧 가니까, 당신들이 책임지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며 "사회 밑바닥에 깔린 악(惡)들을 해체하는 것은 젊은 세대의 문제이고, 기득권이 도덕적 각성에 도달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인류사에 그런 일은 없어요. 그런 세상은 없어요. 젊은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해야 해요. 해답을 요구하고, 말하자면 들이받아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자기 주변의 문제를 잘 들여다보고 적극적으로 발언해서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몰아가기를 나는 바랍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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