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의 경제읽기]금융시장에서 항상 들어맞는 법칙
“지금 금융시장을 볼 때 가장 중요한 데이터가 무엇인가요?”
세미나에서 강연을 하다보면 흔하게 받는 질문이다.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때그때 다르다”고 대답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시장의 환경과 이벤트가 계속해서 바뀌는데 항구적으로 가장 중요한 데이터가 존재할 수 없다. 참고로 코로나19가 창궐하던 2020~2021년에는 코로나19 확진자 수(특히 미국의 확진자 수)가 금융시장의 가장 큰 변수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누구도 코로나19 확진자 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후에는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이 이슈였던 만큼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가 관심을 받았고, 최근에는 미국 경기 둔화 우려에 실업률이 보다 중요시되고 있다. 결국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가장 중요한 지표는 없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에는 ‘샴의 법칙’(Sahm’s Rule)이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3개월 평균 실업률이 이전 12개월간 가장 낮은 실업률 대비 0.5%포인트 이상 상승한 경우 불황이 찾아온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과거 미국의 실업률 추이를 보면 최저 수준까지 실업률이 내려간 후 급격하게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실업률 급등은 미국의 경기 침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과거 실업률 변화의 흐름 중 실업률 급등 이전에 나타나는 현상을 잡아낸 가장 설명력이 높은 지표로 샴의 법칙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최근 발표된 미국의 실업률 3개월 평균이 12개월 최저치에서 0.43%포인트 상승하면서 샴의 법칙이 경고하고 있는 0.5%포인트 수준에 바짝 다가서게 되자 미국의 경기 침체 논란이 재차 거세진 상황이다.
그렇다면 샴의 법칙은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관성의 법칙’처럼 하나의 명제 혹은 진리처럼 작용하는 것일까? 비슷한 맥락에서 2년 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국의 장단기 금리 역전을 생각해볼 수 있다. 2년 전 미국의 성장률이 2개 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기술적 경기 침체의 우려가 커졌었고 2022년 7월을 전후로 미국의 10년 금리와 2년 금리가 역전되는 장단기 금리 역전이 현실화되었다. 2년 국채금리(단기금리)보다는 10년 국채금리(장기금리)가 높은 것이 일반적인데, 2년 국채금리가 10년 국채금리를 넘어서게 된 것이다. 과거 연구를 보면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 이후 1년~1.5년 후에는 어김없이 불황이 찾아왔음을 알 수 있다. 2년 전 장단기 금리 역전이 나타나자 경제학자를 비롯, 각종 외신에서는 미국 경제의 침체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음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아직까지 미국 경제 침체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미국의 은행들은 단기로 자금을 조달해 장기로 대출을 해주곤 한다.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으면 은행들의 마진이 줄어들기에 대출을 줄이게 되고, 이로 인해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미국의 금융시장은 상업은행의 대출뿐 아니라 채권시장을 통해서, 혹은 사모 대출시장 등을 통해서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과거와 다른 금융시장 상황 앞에서 장단기 금리 역전은 과거만큼의 정확성을 보이지 못한 것이다.
샴의 법칙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실업률이 높아지는 이유가 경기 둔화 우려를 반영하면서 일자리가 급격히 사라지는 것 때문이 아니라, 이례적으로 빠르게 늘어난 이민에 기인한다면?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민을 많이 늘렸는데, 이로 인해 미국 내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들이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노동의 수요가 경기 침체로 파괴된 것이 아니라 노동의 공급이 증가한 데서 실업률이 높아진 것이라면 과거와는 다른 관점에서 샴의 법칙도 봐야 하지 않을까?
샴의 법칙이 맞다 틀리다를 논하는 게 아니다. 사회과학에서 무슨 법칙이 있고, 그대로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매우 위험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항상 1순위 중요도를 갖는 지표도 없고, 항상 들어맞는 법칙도 금융시장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건영 신한은행 WM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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