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오늘]장벽

기자 2024. 7. 2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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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도처에 장벽이 있다. 침략자를 막기 위한 장벽이 있는가 하면, 피아(彼我)를 구분하기 위한 장벽도 있다. 전자의 대표적 예가 우주에서도 보인다는(하지만 보이지 않는) 만리장성이다. 후자는 한때 냉전의 상징물이었으나 지금은 ‘기억’을 위해 일부 보존되고 있는 베를린 장벽이 대표적이다. 베를린 장벽이 상징성만 남았다면, 휴전선은 피아를 구분하는, 분단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 의지가 담긴 장벽도 있다. 네덜란드엔 암스테르담, 로테르담처럼 명칭 끝에 담(dam)이 붙는 곳이 많은데, 바다나 강의 범람을 막으려 댐을 설치한 도시들이다. 댐은 ‘막다’ ‘차단하다’ 뜻을 담은 중세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장벽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편이다. 적을 막는 일도, 피아를 구분하는 일도, 바다의 범람을 막는 일도 결국 삶을 위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장벽은 되레 삶을 파괴한다.

이탈리아 작가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은 마음속에 드리운 장벽이 인간 삶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보여준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조반니 드로고는 국경에 있는 바스티아니 요새로 배치된다. 요새는 도시와 거리도 멀어 쇠락했다. 드로고는 전출을 요청했지만 경력 관리를 위해 4개월 정도는 버텨야 한다는 사령관의 충고가 돌아왔다. 살면 살아진다고 했던가. 드로고도 요새 생활에 하나둘 적응했다. 문제는 요새가 삶의 전부인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저 넓은 평원 너머에서, 항상 안개가 자욱한 그곳에서 금방이라도 적이 쳐들어올 거라 믿었다. 전시 혹은 그에 준한 상황이었을까? 아니다. 평화로운 시기였다. 그럼에도 요새의 군인들은 언젠가 쳐들어올 적들을 전설에 나오는 북방 이민족인 ‘타타르인’이라고 불렀고, 평원 끝에 보이는 “작고 검은 점”이 그들이라며 예의주시했다. 요새는 군인들의 마음속 장벽으로 인해, 있지도 않은 장벽 너머의 적들과 대치하며 혼란에 빠지고 만다.

‘전염병’은 오늘날 ‘장벽’을 만든 또 하나의 기제다. 코로나19의 유일한 해법은 몸과 마음에 장벽을 쌓는 일이었다. ‘거리 두기’는 그 시절 시대정신이었고, 함께 사는 삶보다 혼자만의 삶을 유일한 생존기술로 여겼다. 최은미의 장편 <마주>는 코로나19 당시를 배경으로, 마음에 장벽을 쌓을 수밖에 없는 시대에도 서로를 향한 끈을 못 놓는 사람들의 관계에 주목한다. 나리는 상가에 캔들과 비누를 만드는 작은 공방을 연다. 이내 코로나19가 확산되고, 공방을 드나들던 수미가 확진되면서 상가 전체가 텅 빈다. 확진자 동선이 실시간 중계되던 시절 아니던가. 설상가상, 수미의 확진 이틀 전, 수미의 폭력성을 알게 된 나리가 수미의 딸 서하를 보호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깊어진다. 한동네에서 또래 아이들을 키우며 가까워졌지만, 서로의 공간을 침범했다는 피해의식은 마음의 벽을 세우기에 충분했다. 엄마 수미와 딸 서하가 쌓아올린 마음의 벽도 깊었다. 나리의 말이다. “마음이 수없이 헤집어지더라도 나는 수미와 서하가 겨우내 서로를 충분히 겪길 바랐다. 두려움을 껴안고서라도 마주 보길 바랐다. 수미가 실감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내 공방 문을 열어놓을 수 있었다.”

첨예한 대립이 불가피한 우리 세계는, 얼마나 높은 장벽을 쌓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물리적 장벽이 아니라 마음의 장벽이 더 치명적일 테다. 마음의 장벽이 부풀어 물리적 장벽이 구축되기 때문이다. 나를 지키기 위한 방편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마음에 장벽을 쌓는 순간, 모든 대화는 단절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지금도 누군가를 향해 혹은 어떤 사안에 대해 마음의 장벽을 쌓고 있지는 않은가.

장동석 출판평론가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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