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미래를 구원하는 사람
엄마가 생활보호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매일 작은 경차를 타고 시골의 좁은 길을 따라 혼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찾아간다. 그중엔 일주일에 한두 번, 엄마가 찾아가는 것이 사람과의 유일한 접촉인 사람들도 있다. 요양원에 입원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은 것은 아니니 그나마 상황이 나은 사람들이다. 엄마는 그들의 냉장고에 반찬은 있는지, 보일러가 고장나지는 않았는지, 집 안이 어지럽지는 않은지 생활 전반을 살핀다. 그리고 마주 앉아 팔과 다리를 주무르며 아침은 드셨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걱정거리는 없는지 묻는다.
한 할머니는 생활이 유독 궁핍했다.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자식들은 연락이 두절됐다. 모아놓은 돈도 받을 수 있는 연금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끼니를 챙길 돈도 없어 몸이 여위었다. 빈궁한 생활이 창피해 밖을 더 나가지 않게 됐다. 엄마는 그 할머니의 생활을 유심히 지켜보고, 사정을 듣다 몇 가지를 떠올렸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할머니 같은 사정이 있으신 분들을 나라에서 도와주는 제도가 있어요”라고 말했을 때 할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나라가요? 저를요?” 엄마는 다음날 할머니의 손을 잡고 면사무소를 찾았다. 이후 할머니의 생활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는 여기에 몇 문장을 쓰는 것으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또 다른 할머니는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아 반년 동안 거의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엄마도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 평소에 보청기를 착용해야만 하는데, 그 할머니도 귀가 들리지 않으니 서로를 향해 아무리 소리를 쳐도 대화가 통하지를 않았다. 엄마는 고심 끝에 할머니의 아들에게 연락을 했다. 어머님 귀 상태가 좋지 않으니 병원에 가 보았으면 한다며, 보청기 구입 비용은 나라에서 전부 지원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지원을 받기 위해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까지 꼼꼼히 적어서 보냈다. 그 또한 엄마가 인터넷과 면사무소를 오가며 찾은 정보였다. 내가 아는 엄마는 평소에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는 것도 어려워하는 인물이기에,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아드님은 연락을 받고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갔다. 그리고 할머니가 노화에 따른 난청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닌, 그저 귀가 귀지로 가득 차서 들리지 않았던 것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할머니는 이비인후과에서 치료를 받고 보청기를 맞추지 않았다. 그냥 귀를 팠다. 도대체 얼마만이었을까? 그리고 곧장 다음날부터, 할머니와 엄마는 대화가 통했다. 만나고 처음이었다. 할머니가 외쳤다. “글쎄 나 보청기 필요 없댜!”
환갑인 우리 엄마가 보청기를 하는데 팔순인 할머니는 귀지를 파고 다음날 귀가 뚫리다니, 나는 도저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하려 하는데 엄마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인이란 그런 거야. 아주 익숙하고 단순한 것을 놓치고 있는데도 모르게 되는 것. 내가 마지막으로 귀를 판 게 언제였는지 하는 아주 사소하고 당연한 것을 잊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 내 귀가 들리지 않게 될 때까지 무감해지고 마는 것.”
엄마가 권하지 않았다면 할머니는 그대로도 쭉, 들리지 않는 세계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생활보호사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인가? 엄마가 한 일은 타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구원의 종류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아직 늙고 병든 몸으로 혼자 살아가는 생활을 상상하지 못한다. 언젠가 그 시간이 도달할 것만을 안다. 우리는 모두 그곳을 향해 가고 있다. 날이 갈수록 엄마의 발은 더욱 바빠진다. 마치 다가올 자신의 미래를 구하고 있는 듯이.
양다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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