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서울의 세계 유명 화랑들
20세기 초 미국은 경제 대국이 된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다만 유럽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만은 그대로였다. 세계 예술의 수도는 여전히 프랑스 파리였다. 그런데 소련과 나치 독일이 등장하자 몬드리안·샤갈·뒤샹 등 많은 화가가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에 도착한 몬드리안은 대도시 빌딩의 기하학적 아름다움과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돼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를 그렸다. 2차 대전을 분기점으로 뉴욕은 파리를 밀어내고 세계 예술의 수도가 됐다.
▶기업가들이 변화에 앞장섰다. 솔로몬 구겐하임과 그의 조카 페기, 섬유재벌인 콘 가문의 클라리벨·에타 자매가 유명했다. 솔로몬은 뉴욕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었고, 페기는 칸딘스키·달리·자코메티·피카소 작품을 수집하면서 자신이 후원하던 잭슨 폴록과 유럽 대가들의 교류에도 정성을 쏟았다. 콘 자매는 마티스를 후원했다. 마티스는 자매가 작업실을 찾을 때마다 “나의 볼티모어 숙녀들”이라며 반겼다. 두 자매가 타계하며 고향 볼티모어 미술관에 기증한 마티스 작품 500여 점은 미국이 자랑하고 세계인이 사랑하는 컬렉션이다.
▶예술 수도 뉴욕의 위상은 미술품 거래 수치로도 드러난다. 국제 아트페어인 아트 바젤은 지난해 전 세계 미술 거래액 678억달러의 45%인 300억달러가 뉴욕에서 거래됐다고 분석했다. 파리의 비율은 7%로 크게 뒤처졌다.
▶서울은 이 조사에서 1% 점유율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순위에 진입했다. 지난 10년 세계 미술시장은 평균 19% 성장했는데 한국은 220%로 쑥쑥 자란 덕분이었다. ‘미술 도시 서울’에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가 재작년부터 장터를 열었다. 뉴욕타임스는 ‘서울, 미술 세계의 중심 무대 차지’라는 기사에서 “서울은 좋은 컬렉터와 큐레이터, 자본력을 두루 갖춘 아시아 미술시장의 잠재적 허브”라고 평가했다.
▶독일의 유명 갤러리인 마이어 리거가 오는 9월 서울 강남에 문을 연다는 뉴스가 어제 조선일보에 실렸다. 서울 강남에 두어 해 전부터 화이트큐브·페로탕·글래드스톤 등이 줄줄이 문을 열었다. 서울 유명 화랑을 돌아보는 갤러리 투어도 생겨났다. 선진국에서나 하던 미술관 투어를 서울에서 하는 세상이 됐다. 한국 미술 시장이 떠오르는 배경에는 홍콩의 상대적 침체가 있다. 막강한 중국 자본으로 여전히 아시아 미술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지만 홍콩국가보안법 이후 기업과 개인의 자유가 위축된 탓이 크다고 한다. 서울은 정반대다. 자유와 발전을 위해 흘린 땀이 ‘예술도시 서울’이라는 값진 열매를 맺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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