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칼과 방패 그리고 저울 이야기
국민권익위원회는 경찰, 검찰, 법원과 달리 강제조사권, 기소권, 최종처분권이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 배우자의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 종결 처리가 대통령 탄핵 청원과 맞닿아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많은 국민이 대통령 배우자의 명품백 수수 장면을 봤지만, 청탁금지법 주무기관인 권익위는 제대로 된 조사 없이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헌법 제1조와 제1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이는 국민과 국가가 한 계약이다. 때문에 권익위의 이번 종결 처리는 국민과 국가 간 사회계약에 대한 정부 측의 심각한 불이행 사건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는 개별 법률의 위반 여부를 떠나,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헌법 정신을 위배한 행위로서 국민과 국가 간 사회계약을 정부가 훼손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국민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서민 가정의 부부는 맞벌이를 하며 월급을 합쳐도 생활비와 교육비, 의료비 등으로 저축은커녕 대부분 빚을 져야 하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 배우자가 명품백을 수수했다는 소식은 대다수 서민 가정에 큰 박탈감을 안겨주었다. 비정규직이나 최저임금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기본 생활비조차 충당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이들 노동자도 분노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다. 많은 청년은 학자금 대출과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고용 상태 등으로 인해 삶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정한 사회를 꿈꾸는 청년들에게도 대통령 배우자의 행동은 큰 실망감을 불러일으켰다.
권익위는 어떻게 국민의 고통을 묵인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이는 권익위가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 있다. 권익위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권익위보다 힘이 센 검찰과 법원도 그렇게 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채 상병 사망 사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이태원 참사 등은 모두 대통령 배우자의 명품백 사건을 종결시킨 시스템과 같은 방정식 위에 놓여 있다. 법률은 민주주의에 절차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장치이며, 민주주의는 법률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뿌리다. 그러나 정권은 법을 통해 권력을 보호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권익위는 물론이고 검찰과 법원도 동시에 혁신해야 한다. 법과 질서에 기반하여 공공의 이익을 지키는 역할에서 검찰이 칼이고 법원이 저울이라면, 권익위는 방패이기 때문이다. 이 셋은 대한민국 질서 유지를 위한 통합 패키지이다. 검찰의 조서, 법원의 판결서, 권익위의 의결서를 데이터로 분석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 모든 문서는 행정문서이므로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활용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법적 판단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수사와 판결, 의결의 오류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전관예우, 이해충돌, 부적절한 수사, 선고, 의결도 패턴 분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달 초 MBC <PD수첩>과 공공의창은 검찰, 법원, 권익위의 모든 조서, 판결서, 의결서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고 활용하는 것에 대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공동 여론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법 적용의 오판을 줄이고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찬성한 응답이 72%, 개인정보 유출 위험과 비용 과다를 이유로 반대한다는 응답이 17%로 나타났다(7월16일 <PD수첩> 방송).
3개 기관의 결정 문서를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분석할 수 있다면, 권익위뿐 아니라 사법기관도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이와 같은 사건으로 정부가 국민을 기망하거나, 대통령 탄핵의 사유가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최정묵 공공의창 간사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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