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한 마리 펭귄을 키우는 데 필요한 책임과 믿음
사시사철 추운 남극에서도 가장 추운 겨울인 5월에서 8월까지는 황제펭귄의 번식기다. 황제펭귄은 암컷이 낳은 알을 수컷이 품어 부화한다.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와 시속 100㎞에 달하는 칼바람 속에서 두 달여를 꼼짝하지 않고 발 위에 놓인 알을 소중히 품은 채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는 황제펭귄의 모습은 ‘부성애’의 대표적 이미지로 그려진다. 심지어 수컷 펭귄은 오랜 굶주림 속에서도 끝까지 소화흡수되지 않고 배 속에 남겨둔 물질들로, 젖과 비슷한 유동식인 펭귄 밀크(Penguin milk)를 만들어 새끼에게 먹이기도 한다. 이러한 아빠 펭귄의 숭고한 부성애는 감동적이지만, 어린 펭귄이 무사히 살아남아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부성애 외에도 다른 것이 필요하다.
한 마리의 새끼 펭귄을 건강하게 키워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 펭귄 모두의 책임감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새끼가 부화되고 며칠이 지나면 알을 낳고 떠났던 암컷이 돌아온다. 충분히 먹이를 먹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채 말이다. 이제는 수컷이 떠나고 암컷이 남을 차례다. 갓난 펭귄은 아빠의 발 위에서 엄마의 발 위로 자리를 옮기고, 아빠가 먹여주던 펭귄 밀크 대신 엄마가 토해주는 유동식을 먹으며 자라난다. 통통했던 엄마 펭귄은 얼마 못 가 살이 쑥 내리고 홀쭉해진다. 하지만 이들은 기다린다. 한 달 정도 지나면 떠났던 쪽이 되돌아와 배턴터치해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황제펭귄의 릴레이 육아는 어린 펭귄이 자라 털갈이를 하고 스스로 먹잇감을 잡을 수 있을 때까지 약 반년 정도 지속되는데, 이 기간 동안 어미와 아비는 번갈아 자리바꿈을 하며 새끼를 먹이고 보듬는다. 그래서 새끼 한 마리를 키워 독립시키고 나면, 암수 모두 30~40㎏에 달했던 체중이 20㎏ 초반대로 줄어든다.
이런 릴레이 분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시간에 배턴터치를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떠나는 쪽보다는 남는 쪽이 져야 하는 부담이 크다. 남으면 본인은 쫄쫄 굶으면서 새끼는 꼬박꼬박 챙겨 먹여야 하니 말이다. 돌아가면 고생길이 훤하니, 떠난 쪽은 어쩌면 돌아가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황제펭귄의 커플십은 매우 끈끈해서 새끼를 다 키울 때까지는 절대로 한눈을 팔지 않는다. 떠났던 이들은 어김없이 돌아와 기꺼이 고된 책임을 넘겨받기에 남은 쪽은 안심하고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항상 변수가 있기 마련이어서 떠난 쪽이 바다에서 천적의 습격을 받아 불귀객이 될 수도 있고, 이정표 하나 없는 남극 대륙의 허허벌판에서 깜빡 방향을 잘못 잡아 길을 잃고 헤매다가 제시간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남은 쪽은 최대한 버텨보지만, 버틸 수 있는 한계점에 이르면 어쩔 수 없이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야 한다. 이때 아직 어린 새끼는 어미나 아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부화지에 남겨지는데, 길을 잃고 헤매다 돌아온 혹은 서둘러 먹이를 구해 돌아온 펭귄이 마주하는 건 대개 허허벌판의 강추위 속에서 이미 굶어죽었거나 얼어죽어 돌처럼 굳어버린 자식의 몸이다.
‘그리고 그들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 속 결말이, 현실에서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특히나 사람의 아기는 반년 정도만 키우면 되는 펭귄과는 달리 어른이 되기까지 스무해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돌아가면 고생스럽다는 것을 알면서도 종족 번식의 본능에 충실해 매번 돌아오는 펭귄과는 달리, 생각할 줄 알고 예측할 줄 아는 인류는 고생길에 들어서는 걸 망설이고 있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236개 국가 중 인구대체출산율(현재 수준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인 2.1명을 넘어서는 나라는 99개국뿐이며, 특히나 OECD 회원국 중에서는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출산율이 1명대로 떨어진 상태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이미 2018년부터 1명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저출산국이 된 이래 한 번도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심정으로 출산율 회복을 위한 각종 정책을 내세우며 안간힘을 쓰고는 있으나, 안타깝게도 그 어떤 정책도 그다지 효과가 없는 듯싶다. 그 원인의 바탕에는 펭귄이나 사람이나 아이는 낳아둔다고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니며, 아이가 무사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양육자들의 책임감과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 부족이 있다. 오로지 신생아 탄생 시 주어지는 축하금만이 아니라, 아이가 성장하면서 필요한 모든 자원을 아우르는 세심한 지원이 단계별로 계획되어야 하며, 아이의 일차적 양육자는 부모와 가족이지만, 그 뒤에서 국가와 사회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리라는 신뢰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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