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함경도 지형·가구 수 담아 총 35면…군사 관련 정보없어 이례적

권유리 국립해양박물관 학술연구팀장 2024. 7. 2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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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검색만 하면 모든 지역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땠을까?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한 조선은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각 도의 주요 지리 정보를 담은 도별 지도와 고을 지도 등 다양한 형태의 지도를 제작해, 지방을 통치하는데 활용했다.

고을 지도를 통해 지방관이 홍수, 가뭄 등의 자연 재해에 대응하고, 고을의 인원과 세금 징수 등의 정보를 통해 자신의 관할 구역을 잘 파악하는 것이 필수 요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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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꺼낸 바다 <29> 시간과 공간을 담은 지도 함경도 해안지도첩

오늘날에는 검색만 하면 모든 지역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땠을까?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한 조선은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각 도의 주요 지리 정보를 담은 도별 지도와 고을 지도 등 다양한 형태의 지도를 제작해, 지방을 통치하는데 활용했다. 조선의 대표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목민심서’에는 고을의 수령인 목민관이 가져야 할 의무와 책임들이 서술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로 관리가 부임한 뒤 서둘러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고을 지도를 그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870년대 이후 함경도 지역을 그린 ‘함경도 해안지도첩’.


“수령은 취임한 지 10일이 지나면 경험이 많은 자들을 불러 그 고을의 지도를 작성하게 하되, 내가 이 지도를 만드는 것은 민호의 성쇠를 알고자 함이니, 기와집이 몇 집이며 초가집이 몇 집인가 자세히 탐지하여 한 집이라도 틀리는 일이 없어야만 죄가 없는 것이다.”

고을 지도를 통해 지방관이 홍수, 가뭄 등의 자연 재해에 대응하고, 고을의 인원과 세금 징수 등의 정보를 통해 자신의 관할 구역을 잘 파악하는 것이 필수 요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 지역의 지도를 작성하고 활용하는 일은 지방 통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립해양박물관 3층 해양관에는 1870년대 이후 함경도 지역을 그린 ‘함경도 해안지도첩’이 있다. 총 35면에 걸쳐 접는 형태로 제작되었는데, 함경도 덕원부터 단천까지의 해안 지형과 바다 산 마을 섬 등을 표시하고 있다.

당시 함경도 지역은 군사적 요충지였으므로, 진(鎭)·병영(兵營)·봉수(烽燧)를 중심으로 하는 군사 목적의 지도가 대부분이었다. 그에 비해 이 자료는 기존 군사 목적의 지도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이 지도는 육지와 바다 쪽 모두 양방향으로 마을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고, 군(郡)·현(縣)·관아(官衙)·감영(監營) 등을 표기했다. 군영 관련 기록은 나타나지 않으며, 역참(驛站)·읍(邑)·마을 이름과 가구 수(戶)·사찰·정자·창고 등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즉 이 지도는 군사적 목적보다는 ‘목민심서’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지역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지도에는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덕원 원산도의 서원 훼철 기록이다. ‘신안에 주부자(주희·朱熹), 송우암(우암 송시열) 서원이 있는데, 지금은 훼철되었다고 한다.(新安有朱夫子宋尤庵書院 今以毁撤云)’는 주기 사항에서 덕원에서 유배 생활을 한 우암 송시열의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용진서원(龍津書院)의 창건과 훼철에 대한 사항을 파악할 수 있어, 지도의 작성 시점을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이후로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지도 한 장만으로도 우리 조상들이 산 그 시대의 시간과 사람, 공간의 의미를 모두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일 것이다.

※ 국립해양박물관·국제신문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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