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오른다고 하면 정말 오를까: 인플레 심리학 [마켓톡톡]
인플레이션 발생 4대 원인
수요·공급·환율·기대 인플레
1년 후 물가상승률 전망치
실제 인플레에 큰 영향 미쳐
중앙은행장 소통 열심인 이유
정부 신뢰와 경제 정보 많은
선진국 기대 인플레 영향 많아
7월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28개월 만에 2%대로 내려왔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다양한 방식으로 실제 물가 상승률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중앙은행장들이 시장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것도 기대 인플레이션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대 인플레는 선진국과 신흥국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물가와 기대 인플레의 관계를 알아봤다.
앞으로 1년 동안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를 예측한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2022년 3월 이후 28개월 만에 2%대로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7월 24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7월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2.9%로 한달 전보다 0.1%포인트, 1년 전보다는 0.3%포인트 하락했다. 우리나라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2022년 7월 4.7%까지 올랐었다.
기대 인플레이션만큼 "경제는 심리다"는 말을 잘 보여주는 수치도 없다. 기대 인플레는 경제주체들의 주관적인 답변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통계를 내는 과정이 그렇다. 7월 기대 인플레율은 한국은행이 지난 7월 10~17일 전국 도시에 사는 25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했다. 답변에 응한 2291가구에 지난 1년간 물가 상승률을 먼저 알려준 다음, '보기'에서 1년 후 예상 물가 상승률을 선택하도록 한다.
■ 인플레 심리학➊ 상상과 현실=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큰 수요 혹은 부족한 공급이다. 총수요가 커져서 총공급을 초과하면, 제품 가격이 상승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제품 생산비용이 너무 높아져서 상품 공급량이 감소해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환율도 인플레를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원화 가치가 떨어져서 환율이 급등하면 수입품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환율 급등은 수출기업의 제품 가격 경쟁력을 높여주는데, 이 같은 수출 수요의 증가도 총수요를 끌어올려 인플레를 유발한다.
그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앞으로 1년 동안 물가가 10%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업은 제품 가격을 그에 맞춰 인상하고, 근로자들은 구매력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높은 임금을 제시하는 일자리를 찾는다. 그래서 기대 인플레이션은 실제 인플레이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다만, 모두가 같은 숫자의 인플레이션율을 전망할 확률은 다행스럽게도 0에 가깝다. 실제 세상에서 사람의 생각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만약 종교나 정치의 세계에서 자주 목격되듯 기대 인플레이션에서도 맹목적 신뢰가 발생한다면, 중앙은행은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 중앙은행장들은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적극적이다. 기대 인플레이션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해 관리하기 위해서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시장에 향후 물가 예측 수준을 어느 정도 제시하고(포워드 가이던스), 사람들이 비슷한 수준의 물가 전망치를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이를 배가 돛을 내리는 것에 비유해 '앵커링(anchoring)'이라고도 한다. 제롬 파월은 2022년 한 연설에서 "사람들이 유입된 데이터에 상대적으로 둔감하다는 의미"라고 앵커링을 정의했다.
■ 인플레 심리학➋ 신뢰의 효과=기대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을 얼마나 신뢰하는지에 크게 좌우된다. 신뢰 주체의 범위를 더 넓혀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현재 정부, 나아가 경제 체제를 얼마나 신뢰하는지도 기대 인플레이션에 나타난다. 국가의 경제발전 정도에 따라서 기대 인플레이션이 실제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23년 10월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는 경제발전 정도에 따라서 기대 인플레이션이라는 상상이 얼마나 현실에 반영되는지를 숫자로 보여줬다. 보고서는 '기대 관리(Managing Expectations)' 항목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이 1% 상승할 때마다 실제 물가상승률이 선진국에서는 0.8%포인트씩, 신흥국에서는 0.4%포인트씩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선진국일수록 중앙은행을 신뢰하는 이들이 많고, 물가를 전망하는 정보도 풍부해 기대 인플레와 실제 물가상승률이 유사하게 움직인다. 신흥국 사람들은 부족한 정보와 과거에 겪은 인플레이션 경험을 기반으로 미래 물가 수준을 전망한다. IMF는 "과거지향적인 사람들은 현재의 금리 상승이 경제에 부담을 줘 물가상승률을 늦출 것이라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한 국가 안에서는 어떨까. 소득 증가를 예상하는 사람일수록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낮은 경향을 보인다.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은 1990년 이후 기대 인플레이션 통계를 분석한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경제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기대 인플레이션율을 낮췄고, 향후 자신의 소득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분석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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