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변화를 이해하려는 실천 [세상읽기]

한겨레 2024. 7. 2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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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유준혁 선생.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뒤 20대 후반, 간디교육연구소와 인연이 닿아 교사 자격과정을 마쳤다. 2008년부터 산청간디중학교, 2014년부터 금산간디학교 고등과정에서 학생들과 동고동락한 중견 교사다. 두곳 모두 비인가 대안학교이다. 올해부터 근무를 잠시 접고 우리 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와 공부를 시작했다. 그 기세가 맹렬하다. 수업, 청강, 각종 세미나와 고전 읽기 모임에 빠짐없이 참여해왔다.

나는 학기마다 대학원 수업을 마치면 모든 수강생과 ‘튜토리얼’을 한다. ‘일대일 면담을 통한 학생 지도’를 일컫는다. 이 만남의 전제조건은 학생 자신의 연구 질문이나 탐구 주제를 일정한 분량으로 제출하는 일이다. 은근히 부담되고, 살포시 기대되기도 하는 만남이다.

준혁 샘은 자신이 16년 동안 현장에서 지켜보았던 ‘학생들의 변화’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 방법을 찾아 여러 책을 섭렵하던 중 파울루 프레이리(1921~1997)를 만났다. 브라질의 교육실천가이자 학자로서 민중교육을 주창했던 인물이다. 1968년에 출간한 ‘페다고지―억눌린 이들을 위한 교육학’은 한국에서 새로운 교육을 꿈꾸던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책이다. 준혁 샘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쓰고 싶은 논문 주제와 방향을 가늠했다.

‘억눌린 사람은 해방을 우연히 얻는 것이 아니다. 해방을 추구하는 ‘프락시스’(praxis)로써 해방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함으로써 쟁취하는 것이다.’ 여기서 프레이리가 언급한 ‘프락시스’란 단순한 ‘실천’이 아니다. 반성적 성찰과 실행을 통해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이른다. 준혁 샘이 현장에서 지켜본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는 무엇엔가 억눌려 있는 존재들이었다. 자기혐오가 신념 수준으로 굳어 있거나 ‘제가 못났기 때문이에요’ ‘돈이 있어야 살잖아요’ 하는 부정과 불안 의식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비교에 대한 불안도 컸다고 했다. 준혁 샘은 진심으로 제자들을 돕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교사의 정성만으로는 소용이 닿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대화 관계가 성립되면 ‘학생들의 교사’와 ‘교사들의 학생들’은 존재하지 않고, 교사-학생인 동시에 학생-교사라는 새로운 관계가 탄생한다. 학생들과의 대화 속에서 교사 자신도 배우는 사람이 된다.’ 실제로 준혁 샘은 이런 경험을 숱하게 겪었다.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생 사이에 진정한 대화가 이뤄질 때 ‘깨어나는 순간’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 순간은 과거의 아픔을 고백하는 친한 친구와의 이야기에서, 인턴십 현장에서 만난 어른 멘토와의 조우를 통해서 다양하게 찾아왔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학생들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대화 속에 교사 자신이 지닌 유사한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고, 그들의 어려움 극복 과정을 지켜보면서 교사 역시 해방감을 경험한다는 점이었다.

‘사랑과 겸손, 신념에 뿌리를 둔 대화가 만들어낸 수평적 관계에서 대화자들 사이에 상호 신뢰가 싹트는 것은 논리적 필연성이다.’ 어른을 깊이 신뢰하지 않는 학생일수록 마음의 비밀번호를 오래도록 알려주지 않았다. 짙은 화장, 비속어, 허세 부리기 같은 행동은 일종의 보호색이었다.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동료의 존재, 눈치 안 보고 뭐든지 해볼 수 있는 환경, 존중과 경청 분위기가 안정적으로 지속되면 아이들은 달라진다. 신뢰를 구축해야 수업이나 멘토링 같은 교육활동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준혁 샘은 깨달았다.

앞서 조금씩 인용했던 프레이리의 문장은 이상적인 철학자의 언술로 들린다. 그렇지 않다. 프레이리는 스물다섯살 무렵부터 브라질 농촌 빈민 지역과 도시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문해교육에 힘쓴 실천가였다.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 정권의 압력으로 1964년부터 15년간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강퍅한 현실과 온몸으로 부딪히며 얻은 깨달음의 언어는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깊은 울림을 전한다. 아마 그런 연유 때문에 비인가 대안학교에서 청춘을 보낸 유준혁 선생의 ‘몸’도 프레이리 언설에 공명했으리라. 튜토리얼을 끝맺으면서 금산간디학교를 졸업한 청년들과 심층 인터뷰를 통해 논문을 구축해보라 조언했다. 청소년들에게 ‘변화의 순간’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찾아오는지 밝히는 일은 학문적으로 중요한 발견이다. 준혁 샘과 청년 제자들의 삶, 그리고 프레이리 교육론이 어떤 모습으로 만나 새로운 담론을 펼칠지 사뭇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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