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증명하긴 쉬워졌지만… [김상균의 메타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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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공개채용을 줄이고 수시채용과 경력직 채용을 늘리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공채를 유지하는 기업 중 약 20%는 올해까지만 공채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수시채용을 함께 운영 중인 기업의 33.7%는 3년 내 공채를 폐지할 예정이다.
필자와 협업하는 기업 중에도 신입사원 공채를 폐지하는 수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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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정기 공개채용을 줄이고 수시채용과 경력직 채용을 늘리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공채를 유지하는 기업 중 약 20%는 올해까지만 공채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수시채용을 함께 운영 중인 기업의 33.7%는 3년 내 공채를 폐지할 예정이다. 필자와 협업하는 기업 중에도 신입사원 공채를 폐지하는 수가 늘고 있다.
공채가 줄어드는 이유에는 기업의 경영난과 환경 변화 등이 있지만, 기업 경영이 점점 더 정밀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백명을 한 번에 뽑아서 이리저리 배치하는 대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세밀하게 뽑는 접근이다. 검증할 데이터, 이력이 충분한 이들을 놓고, 인공지능을 활용해 선별하는 방식이다. 기업은 입사 후 구성원의 역량과 성취까지 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면밀하게 파악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구글은 채용, 성과 평가, 승진 등 인사관리의 거의 전 과정에 걸친 의사결정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직원의 이메일, 회의, 업무 패턴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벌의 위상은 어떻게 될까? 미취업 대졸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삼성청년소프트웨어아카데미는 좋은 예다. 2018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전공의 청년들에게 1년간의 소프트웨어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교육대상은 이공계만이 아니다. 이 과정은 2023년 말 기준으로 5831명이 수료했고, 그중 4946명이 취업해 취업률은 85%에 달한다. 비이공계 전공자가 민간 교육기관에서 1년을 공부하고, 괜찮은 기업의 정보기술 직군으로 취업한다는 점은 놀라운 성과다.
정보기술 분야에서는 학벌보다 실질 능력과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업무 환경 자체가 데이터 중심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개발자 커뮤니티 사이트인 깃허브 활동이 중요한 평가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개발자들은 깃허브를 통해 자신이 개발한 코드를 공유하고, 프로젝트의 규모와 난이도, 기여한 내용 등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역량을 증명할 수 있다. 기업들은 깃허브를 통해 개발자들의 역량을 평가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채용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다른 직무로도 확산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나를 증명하기 쉬운 세상이 되었다. 역량과 성취가 확실한 이들은 학벌 만능주의가 저물어 간다고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는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직무 평가에 깊이 들어오면서, 직장에서 숨 쉴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 정밀하고 조밀해진 평가 시스템 속에서 구성원은 늘 긴장하면서 살아야 한다. 또한 능력을 증명하지 못한 이들의 소득, 일자리는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나를 증명하기 쉬운 세상, 동시에 숨을 곳이 없는 세상이 되고 있다. 나를 증명하기 쉬운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이 현재진행형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조직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이제 학력이나 현재 자리로 자신의 성장과 기여를 주장하기는 어려운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서로를 평가 대상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며 옥죄지는 않도록,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기를 기대한다. 정밀하고 공정한 평가라는 명분으로 인간의 존엄성, 윤리적 가치, 소외 계층에 관한 배려 등이 무시되지 않아야 한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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