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러시아와 직접 대화 할 수 있다” 중국 외교부 밝혀
‘전쟁 장기화, 러 밀착’에 중국도 부담
우크라이나·러시아 중재국 역할 강조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이 3년째 진행되고 있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러시아와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24일 전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왕이 중국 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쿨레바 장관과 중국 남부 광저우에서 만나 회담했다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대화·협상을 하기를 원하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마오 대변인은 “당연히 협상은 응당 이성적이고 실질적 의의가 있는 것이어야 하고, 목적은 공정하고 항구적인 평화의 실현에 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오는 11월 제2차 우크라이나 평화회의를 추진한다면서 이 회의에 러시아 대표단도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은 러시아와 협상하겠다는 의지를 처음 시사한 것으로 평가됐는데, 이날 쿨레바 장관의 언급도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 외교부가 이날 공개한 양국 외교장관 회담 모두발언 영상에서 쿨레바 장관은 중국과의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공통의 기반”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왕 부장은 “복잡하고 계속 변화하는 국제 및 지역 상황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우크라이나 관계는 정상적으로 발전해 왔다”며 “중국은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를 중요시한다”고 밝혔다.
왕 부장은 또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쌍방이 모두 서로 다른 정도로 협상을 원한다는 신호를 발신했다”며 “비록 조건과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지만 우리는 평화에 도움이 되는 모든 노력을 지지하고, 휴전과 평화 회담 복원을 위해 계속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쿨레바 장관은 왕 부장의 초청으로 전날 중국을 방문했다. 우크라이나 장관급 이상 고위 공무원이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중국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한편 러시아 측은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같은날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의 메시지가 “우리 입장과 일치한다”면서도 “세부 내용을 더 파악해봐야 한다”고 말했다고 스푸트니크통신이 보도했다.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서방으로부터 대러 제재를 무력화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이달 초 중국을 러시아의 전쟁 수행을 지원하는 ‘결정적인 조력자’라고 규정했다. 중국 기업이 군수용으로 전환할 수 있는 물자를 수출해 실질적으로 러시아의 전쟁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가 초청받지 않아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지난달 스위스에서 열린 제1차 우크라이나 평화회의에 불참했다. 중국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평화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계획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영토에서의 철군 요구가 빠져 있다.
중국은 러시아의 조력자로 규정될 때마다 반발했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대화를 중재하는 물밑외교를 벌여 왔다. 중국은 리후이 중국 유라시아사무특별대표를 특사로 임명해 지난 5~6월 폴란드,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에 파견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8일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인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를 베이징으로 초청해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중국의 물밑 외교 노력에는 중국 역시 전쟁의 장기화로 곤경에 처해 있다는 것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유럽과의 관계 악화가 단적이다.
비요른 알렉산더 두벤 중국 지린대 조교수는 AFP통신에 “중국이 계속해서 러시아를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로 인한 외교적, 정치적, 경제적 결과에 대해 점점 더 우려하고 있다는 징후가 있다”고 말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4월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에게 중국의 러시아 지원이 유럽의 안보 이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한다고 밝혔다. 미국과의 전략 경쟁을 염두에 둔 상황에서 중국은 러시아와 손을 잡는 한편 유럽이 미·중갈등에서 중립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중·러 밀착은 역시 나토를 매개로 미국과 유럽이 반중전선을 형성하고 동아시아에까지 진출할 빌미가 됐다.
https://www.khan.co.kr/world/america/article/202407111508001
EU와의 무역전쟁과 외국인 투자 감소도 중국에 부담이다. EU는 이달 4일부터 중국산 자동차에 최고 48.1%에 달하는 고율관세를 잠정 부과했다. 올해 1∼6월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작년 같은 기간 대비 29.1% 줄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도 전쟁의 출구 전략을 찾으려면 러시아에 영향력이 있는 중국의 조력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매체 유로마이단 프레스에 따르면 쿨레바 장관은 전날 중국에 도착한 뒤 엑스에 올린 영상에서 “키이우와 베이징이 직접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는 정의롭고 안정된 평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중국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대선 결과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전쟁 피로감을 느끼는 내부 여론이 높아지면서 우크라이나도 평화 협상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KIIS)는 지난 5∼6월 우크라이나 국민 3075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32%가 ‘가능한 한 빨리 평화를 달성하고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 영토를 포기할 수 있다’고 답했다. 영토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응답(55%)이 더 많았지만 ‘영토 포기가 가능하다’는 응답은 1년 사이 3배 증가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쿨레바 장관의 방문은 우크라이나가 ‘중국이 러시아의 결정적 조력자’라는 서방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보도했다. 회담에 성과까지 얻어내면 중국의 외교적 위상이 높아진다. 중국은 전날 팔레스타인 14개 정파를 베이징에 불러모아 ‘전후 가자지구 통치를 위한 단결’을 약속한 ‘베이징 선언’을 이끌어냈다.
https://m.khan.co.kr/world/europe-russia/article/202407240728001#c2b
https://m.khan.co.kr/world/china/article/202407241359001#c2b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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