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온다더니 밤새 154㎜ ‘폭우’…기상청 왜 예측 못했나
수치예보모델 3개 모두 예측 못해
24일 새벽 1시30분, 부산 지역에 ‘호우경보’가 발효됐다. 새벽 1시부터 3시간 가량 쏟아진 비의 양만 무려 154.2㎜였다. 이 비로 부산 사하구 신평동에 사는 80대 남성이 자신의 집에 물이 80㎝ 높이로 차올라 고립됐다가 119 소방대원에 의해 구조되는 등 주택·건물·상가에서 침수됐다는 신고가 16건이나 들어왔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부산은 집중호우 걱정에서 빗겨 서있는 지역처럼 보였다. 전날 기상청이 24일 아침까지 ‘요주의’ 지역으로 중점 관찰해야 할 곳으로 꼽았던 곳은 돌풍과 함께 최대 80㎜ 이상의 비가 예고된 중부지방과 경북 북부 지방이었다. 기상청은 23일 오전까지만 해도 부산·경남 지역에는 고작 5㎜ 안팎의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다. 오후 들어 5~20㎜ 정도로 강수량 예상치를 소폭 상향했으나, 그때도 부산은 ‘강수 집중 구역’으로 분류되지 않았고, 큰 비가 올 수도 있다는 ‘호우예비특보’조차도 없었다.
실제로 부산에선 23일 종일 비가 내리지 않아 기상청의 이런 예측이 찰떡 같이 맞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상황이 심상치 않게 달라졌다. 자정께 시간당 0.7㎜의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24일 새벽 1~2시 사이엔 24.8㎜, 새벽 2~3시 83.1㎜로 쏟아지는 비의 양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사전에 예측치 못한 상황이 펼쳐지면서, 24시간 교대 시스템으로 운영되던 기상청 상황예보실도 긴박하게 돌아갔다. 기상청은 이날 0시45분께 부산 중부와 서부 지역에 호우주의보를 발표했다. 예상 강수량도 20~60㎜(많은 곳 80㎜ 이상)로 올려잡았다. 하지만 내리는 비의 양이 증가하면서 ‘기상특보’를 다시 써야 했다. 기상청은 새벽 1시, 부산 동부까지 호우주의보를 확장한 데 이어 1시30분에는 부산 전역으로 특보를 확대하면서 호우경보로 상향했다. 예보라기보단 사실상 실시간 중계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기상청 관계자는 “호우도 대개 어느 정도는 예측이 돼서, 비가 많이 올 것 같으면 호우예비특보를 내는 등 대비를 하는데…”라고 말을 흐리며, 간밤의 당혹스러운 상황을 전했다.
사실상 완전한 예측 실패인 셈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이번 같은 국지성 호우는 예측 난이도 최상에 해당한다”며 기상청 뿐만 아니라 주요 수치예보모델들도 부산의 호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기상청의 한국형수치예보모델(KIM)이 23일 부산의 큰 비 가능성을 잡아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비슷한 시각 영국통합모델(UM)과 유럽중기예보센터모델(ECMWF)도 각각 부산에 최대 10㎜, 5㎜ 수준의 비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기상청의 수치예보모델은 지구를 가로, 세로 10~15㎞ 간격의 격자로 나눈 뒤 사각형의 꼭지점에 해당하는 지역의 관측값을 활용해 결과치를 얻어내는데 “이번에는 강수대 구역이 너무 작아 예측이 어려웠다”고 한다. 부산 지역의 전체 평균 강수량이 160㎜에 육박했지만, 실제로 비가 집중된 곳은 부산 남서쪽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이런 해명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보인다. 이날 1시부터 낮 12시까지 누적강수량을 살펴 보면 중구 대청동에는 171.5㎜의 비가 왔고, 북동쪽인 금정구에는 11.5㎜가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해상에서 불어온 바람의 강도가 예상보다 셌던 것도 예측 실패를 불러온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24일 새벽, 밤새 수축한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로 강하게 불어닥친 습한 남서풍과 북쪽 대기 상층에서 내려온 차고 건조한 공기가 세게 부딪치며 대기가 불안정해졌다”며 “바다에서 육지로 바로 들어온 습한 바람이 산과 같은 지형적 요소에 부딪히면서 더 큰 상승 작용이 일어나는데, 바람 관측 기기가 없는 해상에서 불어올라오는 바람의 강도가 예상보다 셌다”고 말했다. 특히 남해 해수면 온도가 29도까지 상승하는 등 최근 눈에 띄게 높아진 해수면 온도가 바다발 습한 공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며, 수치예보모델 예측치보다 많은 비를 불러왔다고도 덧붙였다.
예상욱 한양대 교수(해양융합공학과)는 이와 관련해 “지구온난화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 대기 중 수증기 양이 많아지며 기습적 폭우를 더 자주 유발할 수 있다”며 “날씨 예측이 나날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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