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총장 패싱’ 김건희 조사, 근거는 추 전 장관의 수사지휘권? [뉴스AS]

김건희 여사 조사를 두고 검찰 내홍이 커지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0일 오후 1시30분부터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과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해 서울 종로구 대통령경호처 부속시설에서 김 여사를 대면조사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이원석 검찰총장에게 전해진 것은 조사가 시작된 지 10시간 가까이 지난 이날 밤 11시20분께였습니다.

이 총장은 뒤늦은 보고를 받고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격노했다고 합니다. 주요 사항을 보고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이 총장이 거듭 밝혔던 검찰청사 소환조사 역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총장은 대검찰청 감찰부에 김 여사 조사 사후 보고에 대한 ‘진상 파악’을 지시했고, 이에 김 여사 조사를 담당했던 김경목 부부장검사가 반발하며 사표를 내는 등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살아있는 4년 전 장관의 명령
이런 검찰의 내홍의 배경에는 4년 전인 2020년 10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발동한 수사지휘권이 있습니다 . 추 전 장관의 2020년 10월19일 지휘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라임자산운용 사건 관련 여야 정치인 및 검사들의 비위 사건을 포함한 총장 본인, 가족, 측근과 관련된 아래 사건에 대해 공정하고 독립적인 수사를 보장하기 위하여 검찰총장은 서울남부지검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대검찰청 등 상급자의 지휘 감독을 받지 아니하고 독립적으로 수사한 후 그 결과만을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도록 조치할 것을 지휘함
① 라임자산운용 사건 관련 검사, 정치인들의 비위 및 사건 은폐, 짜 맞추기 수사 의혹 사건
② ㈜코바나 관련 협찬금 명목의 금품수수 사건
③ 도이치모터스 관련 주가조작 및 도이치파이낸셜 주식 매매 특혜 의혹 사건
④ 요양병원 운영 관련 불법 의료기관개설, 요양급여비 편취 사건과 관련 불입건 등 사건 무마 의혹 및 기타 투자 관련 고소사건
⑤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수수사건 및 관련 압수수색영장 기각과 불기소 등 사건 무마 의혹
추 전 장관이 윤 총장에게서 도이치모터스 등 사건의 지휘·감독을 배제한 근거는 이 사건에 김 여사가 연루됐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법무부 장관은 박범계·한동훈·박성재로 바뀌었고 검찰총장은 김오수·이원석으로 바뀌었지만 추 전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4년 동안 유효한 상태입니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는 그동안 총 4차례 있었지만, 4년 동안 유지되어 문제를 일으킨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가 4년 동안 길게 이어진 탓이 큽니다.
추 전 장관이 발동한 수사지휘권은 아직 유효할까요? 수사지휘권 발동 당시에는 윤석열 총장의 이해충돌이 문제가 됐던 것이기 때문에 다음 검찰총장에게는 효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수사지휘권 자체가 추 전 장관이 윤 총장에게 내린 것이 아니라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게 한 것이 때문에 효력이 계속 유지된다고 보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후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해지면서, 후자의 입장이 정설로 굳어졌습니다.
박범계 장관의 철회 검토
이런 상황에서 박범계 전 장관은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2022년 3월 추 전 장관이 내린 두개의 수사지휘권을 철회하는 수사지휘권 발동을 검토했습니다. 당시는 검찰총장도 김오수 총장으로 바뀐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박 전 장관의 이런 시도가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이 한동훈 당시 검사장을 무혐의 처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는 보도가 나오자 법무부는 “진의가 왜곡된 내용이 기사화되어 오해의 우려가 있어 논의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정권이 바뀐 뒤에도 법무부 장관들의 소극적 대응은 계속됐습니다. 윤석열 정부 첫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정치적 부담 등을 고려해 수사지휘권 철회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원석 총장은 2022년 9월 자신의 인사청문회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질문을 받고 “전임 장관님들께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배제하는 지휘권 행사를 하셨고, 제가 총장 직무대리로 있는 동안에도 이 사건 관련해서는 일체 보고받을 수 없었다”라고 답했습니다. 추 전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취지입니다.
법무부 장관의 첫 수사지휘권 행사, ‘강정구 교수’ 사건
법무부 장관의 첫 수사지휘권 행사는 노무현 정부 때 있었습니다.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은 ‘6·25는 통일 전쟁’이라고 밝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던 강정구 당시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첫 수사지휘권을 행사했습니다.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은 이런 지휘를 수용하되 사직으로 항의의 뜻을 밝혔습니다.
나머지 3차례 수사지휘권 행사는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습니다. 추 전 장관은 한동훈 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가 연루된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공소제기를 판단해달라며 윤석열 총장이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하려 하자, ‘수사대상이 검찰총장 최측근으로 알려진 한동훈 검사장인 만큼 공정성 시비가 없어야 한다’는 이유로 이를 중단하라는 수사지휘권을 2020년 7월 발동했습니다. 그다음 이번에 논란이 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에 대한 검찰총장의 지휘·감독을 배제하는 수사지휘권 발동이 있었습니다. 추 전 장관에 이어 취임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2021년 3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과 관련한 증인의 모해위증 혐의 사건 처리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며 이 사건 기소 여부를 대검 부장회의에서 다시 심의하라는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였습니다.
총장의 수사지휘권 회복 요청 반려한 법무 장관의 ‘궤변’
이 총장은 김 여사 사건에 대한 신속 수사를 지시한 직후인 지난 6월 수사지휘권 배제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지난 정부의 후임 법무부 장관(박범계)은 수사지휘권 박탈 상황이 여전히 유지된다고 수사지휘권 박탈을 재확인한 바 있다”며 “일선 검찰청(서울중앙지검)에서 다른 일체의 고려 없이 증거와 법리대로 제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선 검찰청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수사지휘권 회복을 요청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이해됩니다.
이 총장은 최근 들어서야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수사지휘권 회복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 총장이 뒤늦게 나선 데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를 직접 지휘해야겠다고 느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박 장관은 수사지휘권은 극도로 제한해 행사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 총장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수사지휘권을 철회하려면, 재차 수사지휘권을 발동해야 하는데 이것은 수사지휘권 행사를 극도로 자제해야 한다는 이번 정부와 박 장관 자신의 철학과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4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지휘권을 둘러싼 논의를 보면, 정권과 여·야가 ‘검찰총장이 누구 편이냐’에 따라 말을 바꿔왔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또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 역시 정치적 부담 때문에 논의를 회피해 온 정황이 뚜렷합니다.
박성재 장관의 해명도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행사를 극도로 자제해야 하는 이유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이를 통해 보장하려는 것은 검찰총장의 독립성과 자율성입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의 지휘·감독 권한을 복원해주는 것이, 박 장관이 주장해 온 ‘수사지휘권 행사를 극도로 자제’하려는 본래 의도에 더 부합하는 일입니다.
결국 ‘법치’를 누구보다 강조하는 이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4년 전 발동된 수사지휘권 문제를 지금껏 방치했고, 그것이 4년 뒤 검찰의 내홍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에 이보다 어울리는 상황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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