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늄 빔 쏴서 미지의 '120번 원소' 만든다
원소는 물질의 고유한 화학적 성질을 나타내는 기본 단위다. 과학자들은 무게나 성질에 따라 원소를 분류해 주기율표로 정리했다. 현재 주기율표의 마지막 번호는 2002년 처음 합성된 118번 오가네손(Og)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118번 이후의 '가장 무거운 원소'를 인공적으로 만들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23일(현지시간) 가장 무거운 원소 합성 기록을 경신하려는 과학자들의 연구를 소개했다.
물질의 고유한 화학적 성질을 나타내는 기본 단위 입자인 원자는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로 이뤄졌다. 양성자 수에 따라 원자번호가 붙는다. 수소(H)는 양성자 수가 1개라서 1번, 산소(O)는 양성자 수가 8개라 8번이다. 원자번호가 클수록 질량도 무겁다. 지금까지 합성된 가장 무거운 원소는 원자번호 118번인 오가네손(Og)이다.
오가네손처럼 원자번호가 매우 큰 '초중량' 원소는 지구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지만 태양 같은 별에서는 생길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중량 원소는 방사능이 매우 강하고 불안정하다.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금방 분열하는 등 대량 생산이 불가능해 실용성이 거의 없지만 새로운 원소를 찾아내는 것은 과학적으로 중요하다.
먼저 원자핵에 얼마나 많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공존할 수 있는지 한계를 밝혀내는 등 물질의 기본 성질에 대한 이론을 채워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양성자가 많을수록 반대 전하인 전자가 핵에 매우 강하게 당겨지는데 이때 핵의 모양이 왜곡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연구할 수 있다.
초중량 원소를 만드는 원리 자체는 단순하다. 두 원소를 고른 뒤 더 가벼운 원소를 이온으로 만들고 더 무거운 표적 원소에 충돌시켜 두 핵의 융합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114번~118번까지의 초중량 원소는 모두 원자번호 20번인 칼슘(Ca)의 동위원소 칼슘-48을 원자번호 90번대 원소에 충돌시켜 합성했다. 동위원소는 원자번호는 같지만 중성자 수가 달라 질량이 다른 원소를 말한다. 칼슘-48은 안정성이 높아 표적 핵과 합쳐질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118번 오가네손은 원자번호 98번 칼리포늄(Cf)에 칼슘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양성자 수를 보면 98(칼리포늄)+20(칼슘)=118(오가네손)이다. 문제는 99번 이후의 더 무거운 원소는 현재 표적으로 둘 수 있을 만큼 만들어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칼슘보다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더 무거운 원소인 원자번호 22번 티타늄(Ti)이나 24번 크롬(Cr) 등에 주목했다.
지난 4월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 연구팀은 티타늄-50 빔으로 116번 원소인 리버모륨(Lv)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티타늄은 칼슘보다 끓는점이 높아 빔으로 만들기 어렵다. 먼저 1800°C에서 티타늄을 기화시킨 뒤 초전도 자석에 가두고 전자를 절반 정도 제거한다. 티타늄 이온은 빛의 속도의 11%까지 가속된 후 원자번호 94번 플루토늄(Pu)으로 향한다. 대부분의 티타늄 이온은 플루토늄을 그냥 통과하지만 충돌했을 때 짧은 시간 동안 목표한 원소가 생성될 수 있다. LBNL 연구팀의 티타늄 빔은 초당 약 6조 개의 이온을 생성한다.
이온 빔의 에너지에 따라 목표하는 초중량 원소가 생성될 확률은 크게 달라진다. 재클린 게이츠 LBNL 중원소그룹 리더는 "핵융합에 적합한 이온 에너지 수준을 고르는 것은 과학이라기보다 예술에 가깝다"고 밝혔다. 아직 초중량 원소를 만들기 위한 '최적의 에너지'를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LBNL 연구팀은 칼리포늄에 티타늄 빔을 쏴 120번 원소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연구팀은 "표적에 쓰일 칼리포늄을 충분히 확보한 뒤 100~200일 동안 티타늄으로 칼리포늄을 '폭격'해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현실적으로는 2~3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초중량 원소를 찾는 노력은 전 세계적으로 경쟁 중이다. 일본 리켄(RIKEN) 이화학연구소는 2018년부터 원자번호 23번 바나듐(V)을 원자번호 96번 퀴륨(Cm)과 융합시켜 119번 원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연구를 진행중이다. 독일 중이온가속기연구소(GSI)도 과거 119, 120번 원소를 만들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러시아 원자력공동연구소(JINR)도 120번 원소를 만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 자료>
- doi.org/10.1038/d41586-024-02416-3
- doi.org/10.1126/science.zlaoe43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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