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에 떨어진 오물풍선···‘명분의 덫’에 빠진 남·북
정부 대북전단 살포 막을 가능성 낮아
관리 안 되는 군의 대북 메시지도 위험
북한이 24일 열 번째 오물풍선을 띄워 보냈다. 풍선은 처음으로 서울 용산 대통령실 경내로 떨어졌다. 군은 나흘째 전방지역 모든 전선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이어갔다. 남·북한은 모두 확전을 원하지 않지만, 먼저 양보할 경우 패배하는 것처럼 비치는 ‘명분의 덫’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등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전 6~7시쯤부터 저녁까지 오물풍선을 띄웠다. 풍선은 오전 8시30분쯤 서울지역에 떨어졌고, 그중 1개는 용산 대통령실 경내로 향했다. 대통령실 경호처는 풍선에 담긴 종이와 비닐류 쓰레기에 위험성 물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수거했다. 이날 오후 4시 기준 경기 북부와 서울 지역에 떨어진 오물풍선은 250여개였다. 이날 오후 9시 이후에도 오물풍선이 서울 상공에서 계속 발견됨에 따라 실제 낙하된 숫자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합참은 별도의 대북 비판 메시지 발표 없이 비무장지대(DMZ)의 남방한계선 철책선에서 24시간 경계근무를 하는 일반전초(GOP) 일대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이어갔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대통령실을 노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풍선에는 추진체(엔진)와 내비게이션 장치가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날려보낸 풍선이 아무런 저항 없이 대통령실에 닿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 위험한 일이란 지적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위험물질이 없는 풍선이 바람에 의해 떨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국가의 핵심시설이 무방비로 노출되는 건 위험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오물풍선이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지만 어느 쪽도 한 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군은 “다양한 추가적 대응책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은 민간단체가 보낸 대북전단을 문제 삼으며 “대응방식의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밝혔고, 이후 3차례 더 오물풍선을 날려 보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민간단체의 활동을 저지하지 않고 있다. ‘힘에 의한 평화’, 북한 내부 체제 균열을 원하는 현 정부 입장에서 대북 전단살포는 장려할 일이기 때문이다. 민간단체들이 자체적으로 활동을 자제할 가능성도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군의 대북 메시지 관리마저 어설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이날 보도된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북한이 “(민간단체가) 풍선(대북전단)을 날리는 거점을 총격이나 포격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자 국방부는 “군의 철저한 대비를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고 국민 불안감을 조성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런 식으로 대북 메시지 관리가 안 되면 접경지역 주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기 어렵게 된다”고 꼬집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북한 어느 한쪽이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면 패배하게 되는 것이라는 덫에 빠져있다”라며 “현재 상황이 지속할수록 고강도 도발로 확전될 위험성은 커진다”고 우려했다. 박 교수도 “현 상황에서 남·북한이 대화에 나서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며 “심리전 단계에서 무력을 주고받는 다음 단계로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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