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러도 끓어오르는 아프리카 청년들의 분노…“나쁜 정치 끝내자”
아프리카에서 청년들이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당국은 무력을 동원해 진압에 나섰지만, 정부 부패와 경제난에 지친 청년들의 분노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분위기다.
시작은 지난달부터 이어진 케냐 청년들의 증세 반대 시위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청년 세대가 조직한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했다. 고물가와 취업난으로 생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빵과 식용유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품목을 대상으로 부가가치세 인상을 포함한 대규모 증세를 추진하자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최소 50명이 사망하는 유혈 사태가 빚어졌지만, 증세 법안이 폐기되고 내각 개편이 이뤄지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23일(현지시간) AP통신은 이날 케냐와 국경을 맞댄 우간다에서도 청년들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며 이 시위가 “케냐의 사례를 본받고자 하는 우간다 청년들의 주도로 조직됐다”고 전했다. 케냐의 시위를 본보기 삼아 이웃 나라 청년들도 정부를 향한 불만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다.
우간다 청년들은 뇌물 수수 의혹이 불거진 아니타 어몽 의회 의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어몽 의장은 각종 부패 혐의가 드러나 지난 5월 영국과 미국의 제재 대상으로 지정됐지만, 이를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하며 퇴진을 거부해왔다.
시위대는 SNS에서 ‘#부패를멈춰라’ 해시태그를 통해 집회를 조직했고, 이날 의회를 향해 행진했다. 경찰 당국은 이날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해 의회 인근 도로를 모두 봉쇄했다. 우간다 인권단체 ‘챕터포우간다’에 따르면 시위 참가자 중 최소 45명이 경찰에 붙잡혀 구금됐다.
그간 우간다에선 여러 고위 공무원의 부패가 잇따랐지만, 이들에 대한 수사나 기소가 이뤄진 경우는 드물었다. 1986년부터 장기 집권해 온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 측근 인사들의 수사를 무마해준 게 아니냐는 의혹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무세베니 대통령은 이번에도 수사 방해 혐의를 부인하며 시위대가 “불장난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청년들은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에즈라 루와샨데는 “이 나라의 권력이 경찰이 아니라 헌법에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며 “부패한 자들이 물러날 때까지 양보는 없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도 다음달 1일 경제난 해결을 촉구하는 청년들의 시위가 예고된 상태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들 역시 “케냐 시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최근 나이지리아에서는 최악의 물가오름세(인플레이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취임한 볼라 티누부 대통령이 해외 투자를 끌어오겠다며 나이지리아 화폐 가치를 절하하는 통화정책을 펴고, 재정난을 이유로 전기 보조금도 폐지한 뒤로 생필품 가격 등이 폭등하는 역효과가 났다. 이에 시위대는 “나쁜 정치를 끝내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석유와 전기 요금 인상안 철회, 무상교육 강화, 인플레이션 대응 강화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나이지리아에서 이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리는 건 약 4년 만이다. 2020년 11월 벌어진 경찰개혁 시위에서 당국의 탄압으로 수십 명이 사망한 뒤로는 대규모 시위가 드물었다고 로이터통신은 짚었다.
다만 이번 시위도 긴장감 속에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카요데 에베토쿤 경찰청장은 시위대가 “케냐 시위를 모방한다는 명목으로 테러를 조장하고 있다”고 맹비난하며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티누부 대통령도 “국가의 어려움을 이용하는 사악한 동기를 가진 시위”에 동참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한편 케냐 청년들도 6주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시위의 성격은 달라졌다. 가디언은 “증세 반대에서 시작된 시위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졌고, 이제는 루토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시위대는 공항을 장악하고 “대통령은 물러나라”고 외쳤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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