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4년만에야 인도 간 LG화학, 왜 피해주민 안 만났나 [왜냐면]

한겨레 2024. 7. 2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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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7일 서울 종로구 LG광화문빌딩 앞에서 열린 LG화학 인도참사 4주기 책임촉구 기자회견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환경운동연합 등 관계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최예용 |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코로나19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던 2020년 5월7일 새벽 2시, 인도 중부 비샤카파트남에 있는 엘지(LG)화학 공장에서 하얀 연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탱크의 냉각장치가 고장 나 플라스틱 원료인 스티렌이 급격하게 끓어오르면서 폭발한 것이다. 스티렌은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다. 인근 마을을 덮친 스티렌 가스는 무려 818톤이었다. 그러나 공장에서는 아무런 사이렌도 울리지 않았다.

사고 당일에만 주민 12명이 사망했고, 585명이 입원했으며, 반경 3~4㎞ 주민 1만9893명이 긴급 대피했다. 6살 어린이부터 80대 노인까지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죽었다. 가스가 흘러간 지역은 나무와 풀이 누렇게 죽었고, 2㎞ 떨어진 곳의 저수지는 오염되어 한달간 식수로 사용하지 못했다.

이 사고는 1984년 보팔참사와 매우 유사했다. 인도 보팔의 미국 농약 회사 유니언카바이드(현재 다우케미칼) 공장에서 농약 원료 독가스가 누출되었다. 이 사고도 새벽에 일어났고 대피 경고도 없었다. 당일에만 주민 수천명이 죽고 다쳤다. 피해자는 수만명으로 늘어났고, 지하수가 오염되어 기형아 피해가 급증했다. 공장 관계자들은 미국으로 도망갔고 사고현장은 방치됐다. 공장은 가난한 지역에 있었고 피해 주민들은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채 사실상 버려졌다.

보팔참사는 공해수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공해수출은 경제 선진국의 기업이 공해 공장을 개발도상국에 세워 안전시설을 충분히 갖추지 않고 운영하다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직업병과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석면산업과 석유화학산업이 대표적인 공해수출 분야다. 20~30년 차이를 두고 미국과 유럽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다시 인도, 인도네시아 등 이웃 국가로 이전하며 환경문제와 건강피해가 반복되고 확대된다.

엘지화학 사고에 대해 유엔 인권조사관은 ‘제2의 보팔참사’라며 개탄했다. 40년 간격을 두고 발생한 두 참사 모두 공해수출 사례이고, 새벽에 대피경고가 없었고, 많은 주민이 죽고 다쳤으며, 해당 기업이 소송을 핑계로 피해 주민에게 배·보상하지 않는 등 여러 면에서 흡사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기업들의 행태는 바뀌지 않은 거다.

스티렌 가스에 노출된 사람들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고 호흡기 질환, 피부병 등 만성질환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다. 사고 이후 3년여 동안 가스에 노출된 주민 11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백도명 서울대 교수와 함께 2023년과 2024년 두 차례 인도 현지를 방문해 주민 건강피해를 조사한 결과의 일부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주민에게서 암 피해가 나타날 우려가 크다.

지난 7월9일 엘지화학 신학철 부회장과 임원들이 인도 비샤카파트남을 찾았다. 사건 발생 4년2개월 만이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2년 연속 인도 현지조사를 통해 주민건강피해보고서를 발표했고,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권리네트워크(ANROEV)가 국제 캠페인을 지속했고, 지난 5월말 한국 언론으론 처음으로 인도 현지 취재를 한 문화방송(MBC)이 3일 연속 보도한 뒤였다. 이 기사에는 ‘한국 기업의 두 얼굴이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 ‘창피하다’는 내용의 댓글이 수천개 달렸다.

7월10일 엘지화학은 ‘잊지 않고 책임을 다하겠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피해를 입은 5천 가구에 생활비를 지원하고 재단을 세워 의료서비스를 지속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엘지화학은 사고현장에서 700㎞ 떨어진 곳에 공장을 세워 올해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인도에서 사업을 계속하려면 스티렌 누출사고로 인한 오명을 씻어야 한다.

엘지화학의 발표에 대해 피해 주민들은 “신학철 부회장을 만나지 못했다”며 할 말이 있다고 했다. 7월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온라인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한국 사회에 직접 전달했다. 생활지원금 규모가 크게 부족하다며, 지난 4년 동안의 병원 비용도 지급해달라고 했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재판 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피해자 배·보상 계획을 세워 참사 5주년인 내년 5월까지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한국 언론은 신학철 부회장이 피해 지역이 속한 안드라 프라데시 주의 총리를 만나는 사진을 일제히 보도했다. 그러나 그가 피해 주민을 만나는 사진은 없었다. 주민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질까 두려웠을까. 엘지화학은 보도자료에 신학철 부회장이 인도 정치인이 아니라 피해 주민을 직접 만나 사과하고 위로하는 사진을 담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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