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은 기본, 분석은 습관’···현대음악 작곡가 김택수의 다작 비결

백승찬 기자 2024. 7. 2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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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엣눙크 페스티벌에서 ‘위드/아웃’ 선보여
직관적인 현대음악으로 주목
지금 현대음악은 ‘경향 없는 경향’
작곡가 김택수. ⓒEstro Studio, Haksoo Kim

현대음악 작곡가 김택수(44)의 홈페이지(www.texukim.com)는 감탄스럽다. 요즘 한국에서는 많이 사용되지 않는 인터넷 홈페이지라는 형식을 고수한다는 점, 내용이 풍성하고 업데이트가 빠르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홈페이지에는 국문, 영문 병기로 작곡가의 작품 목록과 이를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링크, 향후 연주회 일정 등이 10년 이상 꼼꼼히 아카이빙됐다. 특히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계 작곡가 명단과 소개 페이지도 일일이 링크했다. 기관, 학교의 의뢰를 받은 것이 아닌, 김택수 스스로 한 일이다. 김택수는 “홈페이지 관리는 제 음악과 저라는 사람, 또는 제 활동에 대해 관심 가져 주시는 분들께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작은 보답”이라며 “연주 소식도 공식 발표가 나면 빠르게 업데이트 한다. 한 분이라도 더 오시면 제게도, 연주자와 주최자에게도 좋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실한 홈페이지 관리는 김택수라는 작곡가의 작업 방식과도 닮았다. 근 몇 년 사이 국내 여러 오케스트라의 공연 1부는 김택수의 곡으로 시작하는 일이 많았다.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도 낯선 현대음악을 이렇게 다작하는 작곡가는 드물다.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 작곡·음악이론 교수로 재직중인 김택수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김택수의 곡이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음악이 ‘직관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낭만 시대의 클래식 음악처럼 귀를 잡아끄는 선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목을 들으면 곧바로 곡이 무엇을 표현하는지 알 수 있다. ‘바운스!!’에서는 체육관에서 농구 하며 공 튀기는 소리, 운동화가 끽끽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시작으로 뉴욕 필하모닉,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등이 연주했던 ‘스핀 플립’은 양성자와 전자가 회전하다가 반대방향으로 바뀌는 일 혹은 스핀 서브와 플립 샷 등 탁구의 기술을 일컫는다. 부산시향 위촉곡인 ‘짠!!’은 부산의 바닷가에서 직장인들이 술잔 부딪히는 소리를 제목으로 따왔다. 8월 24일 제7회 힉엣눙크뮤직페스티벌에서 아시아 초연하는 세종솔로이스츠 위촉작 ‘위드/아웃’은 소셜미디어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이 느끼는 거리감을 표현했다. 김택수는 “평소 ‘이것에 대해 써보면 좋겠다’는 막연한 느낌이 올 때를 잘 포착해야 한다. 그렇게 포획한 아이디어들은 오랜 시간 숙성을 거쳐 이후에 곡으로 탄생한다”고 말했다.

김택수는 ‘위촉’의 묘미는 ‘커스터마이징’이라고 표현했다. 위촉한 사람이나 단체, 초연할 사람이나 단체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 김택수는 “클라이언트를 고려하면서 제 색깔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도 “그렇다고 위촉단체가 즐겨 연주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쓴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분들이 안 해봤을 만한 것들을 쓸 때도 있다. 작품 쓰는 과정에 초고를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세종솔로이스츠가 지난 5월 22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 잰켈홀에서 김택수의 ‘위드/아웃’을 세계 초연했다. 연주가 끝난 후 김택수가 커튼콜에 응하고 있다. ⓒPeter Matthews

현대음악의 경향은 ‘경향이 없는 것이 경향’이라고 했다. 1980년대까지 ‘주류’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기존 음악 질서에 도전하기 위해 연주와 감상이 쉽지 않은 작품을 써왔지만, 이후엔 차츰 리듬, 코드, 멜로디 등에 있어 어디서 들어봤음직하고 듣기 편한 음악의 비중이 높아졌다고 한다. 김택수는 “음악이 조금 난해하게 들리는 경우라도, 청중을 위해 그 음악이 전달하고자 하는 스토리를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는 추세”라며 “영미권에서는 인종·성별 등 측면에서 다양한 성장 배경을 가진 작곡가의 작품,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지 않은 작곡가들의 작품도 조명 받고 있다. 사회적 진보주의와 더 참신한 음악을 찾기 위한 열망이 만난 결과로 본다”고 말했다.

김택수는 ‘과학 영재’ 출신이다. 서울과학고 재학 시절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 나가 은메달을 땄고 서울대 화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방향을 틀어 작곡 전공으로 서울대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작곡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매사를 분석적으로, 문제 해결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습관은 어렸을 때 형성된 것이라 잘 안 바뀌는데, 이게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또 음악가 같지 않은 말일 수도 있지만 ‘브랜딩’에도 도움이 됐어요. 남들과 다른 경력 때문에 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할 때 사람들의 주목을 상대적으로 더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음악 스승으로 전상직, 진은숙을 꼽으며 “작곡가의 모든 음악적, 비음악적 지식과 경험이 한 음 한 음을 결정짓는데 사용된다고 믿고, 이를 후세대에게 전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는 음악 이론이 철학, 역사와도 연결된다는 점을 가르치고,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라고 독려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한국계 미국인 작곡가 목록을 정리한 것처럼, 김택수는 “주어진 기회들을 현대음악, 클래식 동료들과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부과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립심포니 상주작곡가 경험을 하면서, 저희가 함께 잘 되고 좋은 작품을 남기는 것이 결과적으로 역사에 이바지하는 일이라는 마인드가 생겼습니다.”

김택수는 향후 오페라, 교향곡 등 대규모 작품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9월에는 샌디에이고 심포니의 공연장 리노베이션 기념으로 쓴 ‘웰컴 홈!!’ 초연이 있고,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할 협주곡도 준비중이다.

작곡가 김택수. 세종솔로이스츠 제공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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