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개 넘는 스페인 중세 고성, 유산 아닌 애물단지·흉물로

박은경 기자 2024. 7. 2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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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전역에 최소 1만342채 고성
예산 부족 등 이유, 방치·엉터리 복원
스페인의 고성이 예산 부족 등으로 제대로 복원되지 못한 채 방치돼 ‘흉물’이 되고 있다. 사진은 페나피엘성. Gettyimages/이매진스

1만 채가 넘는 스페인의 고성(古城)이 예산 부족 등으로 제대로 복원되지 못한 채 방치돼 ‘흉물’이 되고 있다고 현지매체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엘파이스는 이날 “스페인에는 1만 채 이상의 고성이 있지만, 보존이 잘되지 않아 매일 성의 일부를 잃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페인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 시기인 1949년 4월 ‘국토에 있는 모든 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왕실 법령을 신설했다. 1952년에는 관련 협회가 설립돼 고성 실태 조사에 들어갔는데, 스페인 전역에는 최소 1만342채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 중 6000채가량은 11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지어졌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의 배경이 된 세고비아 알카사르 성처럼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예도 있지만, 최소 200채는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

<성과 성벽>의 저자인 미구엘 소브리노는 엘파이스에 중세 유산인 성들의 상태는 “재앙”이라고 지적했다.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때 상당수가 파괴됐는 데다 20세기에도 보호법 제정 전까지 무분별하게 파손돼 자재 등이 불법 거래됐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고성의 가치가 주목받으면서 보존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엉터리 복원으로 오히려 가치를 훼손하는 사례도 이어진다. 지은 지 1000년이 넘는 성벽을 마치 콘크리트를 발라놓은 듯한 모습으로 복원한 카디스의 마트레라 성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고학자인 미겔 앙헬 브루는 엘파이스에 “중세 유럽 시대에 외과 의사를 겸했던 이발사가 의학적 지식 부족으로 아픈 팔을 절단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지금 고성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이 ‘환자’(고성)는 불평하지 않았다는 점만 다르다”고 했다.

보호 법령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담당 지역 내 고성의 복원·관리 책임을 맡는다. 그러나 더 타임스에 따르면 대부분의 지자체가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고성을 방치하고 있다. 이 매체는 “설령 복원한다고 해도 활용할 수 있는 대안이 많지 않다”며 “잘 된 경우가 호텔, 레스토랑, 기록 보관소 정도이고 심지어 바르코 데 아빌라의 한 성은 투우장으로 쓰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백 년 된 고성의 구조적 특성상 에어컨 같은 냉방시설이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어려워 공간 활용에 제약이 따른다. 결국 역사적 건축물인 고성은 흉물스럽게 방치돼 지자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엘파이스는 고성의 소유주가 불분명해서 개입조차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기록이 명확지 않거나 기록된 소유주가 이미 사망한 사례도 많다.

더 타임스는 현지 보고서를 인용해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성 보존 운동을 하는 머빈 새뮤얼은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스페인 정부가 모든 성에 대해 단일한 정책을 펼치고 있고, 문화유산 보존의 책임을 17개 자치구로 이관해버렸다”면서 “고성의 보존 가치 순위에 따라 다른 계획을 짤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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