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 폭로하면 돈 된다” … ‘아니면 말고’ 식 자극적 이슈 몰이 경쟁 [Who, What, Why]

안진용 기자 2024. 7. 2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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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y - 사이버레커 왜 근절되지 않나
대중 관심 끌어 조회수 높이기
유튜브 100만 뷰당 300만 원
생방송 슈퍼챗 땐 후원금 두둑
쯔양 협박 뒷돈 등 윤리적 문제
유튜브 제재 90일 지나면 풀려
상업성 치중하며 사실상 방치
檢, 구제역 등 2명 사전구속영장
공갈·협박 피해를 호소한 1000만 유튜버 쯔양(가운데 사진)과 사이버 레커라 불리는 구제역(왼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카라큘라, 전국진, 뻑가. 그래픽 = 전승훈 기자

“악성 콘텐츠 게시자들의 범행에 경찰과 협력해 엄정 대응하고 범죄수익 환수 및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라.”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 15일 전국 일선 검찰청에 이같이 지시했다. 구속 수사도 적극 검토하라고 당부했다. ‘악성 콘텐츠 게시자’들을 명백하게 사회악으로 규정한 셈이다. 이들은 일명 ‘사이버 레커’라 불린다. 최근 1000만 명이 넘는 유튜브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 ‘먹방’ 유튜버 쯔양을 공갈·협박한 사실이 드러나며 이들의 존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렇게 솎아낸 사이버 레커들이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뽑아도 또 돋아나는 독버섯”이라고 입을 모아 우려하고 있다.

◇사이버 레커는 누구인가

사이버 레커(Cyber Wrecker)는 유튜브를 비롯해 온라인상에서 각종 사건·사고를 쫓으며 이를 확대·재생산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해 이슈몰이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레커는 교통사고 현장에서 재빨리 고장 난 차량을 끌어가는 사설 견인차다.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온라인상에서 이를 다루는 영상을 만들어 관심을 끈다는 측면에서 ‘사이버 레커’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이 표현은 유튜브 채널 ‘김성회의 G식백과’가 지난 2018년 11월 올린 영상 중 “영상 제작에서 이슈 선정만큼 중요한 건 속도다, 빨리 올릴수록 유리하다, 레커차 경쟁과 비슷하다”고 말한 후 널리 쓰이게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쯔양을 공갈·협박했다는 이유로 고소·고발당한 ‘구제역’(24일 기준 구독자 17만 명), ‘카라큘라 미디어’(103만 명), ‘전국진 주작감별사’(22만5000명)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외에 뻑가(119만 명)와 지난해 숨진 기자 출신 유튜버 김모 씨가 운영하던 ‘연예부장’(약 60만 명) 등이 대표적인 사이버 레커로 분류된다.

이들은 단순히 이슈를 쫓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보다 자극적인 이야기로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특정인의 개인정보를 마구잡이로 유포한다. ‘선을 지키는’ 기성 언론에서는 다루지 않는 이야기를 해야 관심을 끌 수 있는 탓이다. 이 때문에 사이버 레커들은 각종 송사에 휘말려 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구제역은 이미 협박·명예훼손 등 8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날 검찰은 구제역과 전국진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이들은 고소·고발 사실조차 영상 콘텐츠로 제작해 구독자들에게 후원을 요청하기도 한다.

◇왜 기승을 부리나

“범죄수익 환수 및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라”는 이 검찰총장의 지시 안에 그 답이 담겨 있다. 사이버 레커가 우후죽순 발생하는 것은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대중의 관심을 끌면서 적잖은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구제역은 최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지난 한 달 매출이 1억 원이었다. 평소에도 광고 수익을 포함해 1500만∼3000만 원 정도 번다”면서 적은 돈을 받기 위해 공갈·협박을 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실제 이 정도 수준은 아니더라도 사이버 레커의 수익은 상당한 수준이며 돈의 원천도 다양하다.

통상적으로 유튜브에서는 조회 수 1회당 3원 안팎의 광고료를 배분해준다. 특정 영상이 조회 수 100만 회를 기록했다면 약 300만 원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이 외에도 이들은 라이브 생방송을 통해 구독자에게 후원금을 받는 ‘슈퍼챗’을 진행한다.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의 경우 24일 기준, 누적 슈퍼챗 수입이 24억3000만 원에 육박한다. 한 방송 관계자는 “아프리카TV의 BJ들이 자극적인 방송을 하며 일명 ‘별풍선’을 받는 것과 같은 개념”이라며 “팬덤의 성격은 다를 수 있지만 이들의 입맛에 맞는 방송을 통해 후원을 이끌어내는 속성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또한 해당 채널에 붙는 상업 광고도 적잖고, 대다수 사이버 레커는 계좌번호를 공개한 뒤 후원을 요청한다. 게다가 이렇게 개인 계좌를 통해 거둬들인 수익은 세무당국이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탈세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구제역이나 전국진처럼 개인의 약점을 잡고 이를 폭로한다는 식으로 ‘뒷돈’을 받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쯔양 외에도 이 같은 공갈·협박으로 사이버 레커에게 돈을 뜯긴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결국 이처럼 “돈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사실 확인없이 사건·사고의 자극성만 부각하는 사이버 레커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급증하는 피해, 대책은 없나?

사이버 레커의 폐해는 이미 수년 전부터 꾸준히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021년 2월에는 한 유튜버가 다른 유튜버들의 비난을 견디지 못해 방송 중 극단적 선택을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2022년에도 유명 유튜버 A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고, 그 비난의 화살은 현재 대표적 레커로 손꼽히는 한 채널로 향했다. 해당 채널이 A 씨에 대한 지속적 비난 여론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K-팝 가수인 고 설리와 구하라 역시 사이버 불링에 시달렸고, 설리의 죽음 이후 “저는 설리의 남자친구입니다”라고 거짓 방송을 했던 한 유튜버는 “악플 때문에 징징댈 거면 연예인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해 공분을 자아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유튜버 운영진의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쯔양 사태의 경우 유튜브 측이 부적절한 행위를 한 일부 사이버 레커에 대해 수익 창출을 정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영구적인 제재는 아니다. 통상 90일 이후에는 다시 수익을 낼 수 있다. 솜방망이 대처인 셈이다.

이를 두고 이윤을 추구하는 플랫폼인 유튜브의 한계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유튜브는 이용자와 조회 수가 많아야 더 많은 광고를 받아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콘텐츠의 윤리적인 부분보다는 상업성에 더 신경을 쓰면서 사이버 레커들을 방치한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슈퍼챗도 전체 금액 중 30∼40% 정도는 유튜브가 수수료로 챙긴다. 사이버 레커의 돈벌이가 커질수록 유튜브도 풍족해지는 구조인 셈이다.

현행 방송법상으로 유튜브 채널을 제재할 수 없다는 것도 사이버 레커가 활개 치는 이유 중 하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최근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로 돈을 버는 유튜버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언급했지만, 법안 마련은 요원하다 .

밀양 사건 등 ‘사적 응징’ 지지… 출처모를 폭로에 ‘조리돌림’ 반복

■ 동조하는 대중도 문제

사이버 레커 사태는 빠르게 진정 국면을 맞는 모양새다. 피해자인 쯔양 측이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을 시작했고 경찰과 검찰도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다. 그러자 카라큘라는 유튜브 활동 중단을 선언했고, 전국진도 돈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대중은 “정의가 구현되고 있다”고 외치고 있지만, 그중 적잖은 이들이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실 확인조차 되지 않은 사이버 레커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애먼 이들을 비난했다.

사이버 레커가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사적 제재’다. 최근에는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을 하나씩 공개하며 ‘조회 수 장사’를 톡톡히 했다. 이에 앞서 아동 성폭행범인 조두순이 출소할 때는 몇몇 유튜버가 “조두순을 응징하겠다”며 교도소 앞을 찾아가 생방송을 켜기도 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지지 의사를 표하고 후원금을 보내는 네티즌도 많았다. 이 과정에서 법무부 차량을 훼손한 유튜버 3명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여전히 정의를 운운하며 사적 제재를 가하는 사이버 레커는 적잖은 응원을 받고 있다.

대중의 반성이 일시적이고 공염불에 그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말 배우 이선균이 마약 투약 의혹을 받으며 거센 비난에 시달리다가 숨졌다. 당시에도 사이버 레커들이 등장해 출처를 알 수 없는 녹취록을 공개하며 고인을 몰아세웠고, 그에 장단 맞춘 악플이 쏟아졌다. 하지만 약물 반응은 음성이 나왔고, 억울함을 호소하던 이선균은 결국 수사 결과를 확인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언론과 여론 모두 자성의 목소리를 냈지만 또 다른 이슈가 불거지면 같은 방식의 조리돌림이 반복되는 모양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대중은 논리적 판단보다는 각 현안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중이 똑똑해져야 한다’에 동의하지만 이를 현실화하기는 어렵다”면서 “사이버 레커 활동을 근절시키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이를 통해 사이버 레커의 사적 제재 및 무분별한 폭로가 잘못됐다는 대중적 인식이 확산되길 기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충고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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