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돈 사태가 남긴 질문
지난 4월 출간된 정지돈 작가의 신작 〈브레이브 뉴 휴먼〉은 20여 년 후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204X년, 출생률 감소로 국가가 소멸 위기에 처하자 정부 주도로 인공 자궁에서 태어난 ‘체외인’들이 생겨난다. 국가에 의해 양육되는 체외인은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일반 국민과 달리 법적·사회적 지위가 취약하다. 그런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체외인 아미가 주인공이다. 친구 권정현지는 좀 다르다.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친모를 찾으러 나서는가 하면 체외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출산을 감행하려고 한다.
‘작가의 말’에서 정지돈 작가는 이 작품이 인공 자궁과 가족제도에 대한 자신의 세 번째 소설이라고 밝힌다. 인공 자궁에 관해서는 인공 생식 문제를 숙고한 제2물결 페미니즘의 이론가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글에서 용기를 얻었다고 적었다. ‘인공 자궁이 현실화되면 재생산을 위한 가족이라는 단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출산과 양육을 외주화하면 인간은 구속에서 벗어나 행복해지지 않을까.’
출간 두 달 뒤인 6월23일, 도서 유튜버이자 방송인 김현지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김현지, 김현지 되기’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정지돈 작가가 소설에 자신의 사생활을 무단으로 인용했다고 주장했다. 정 작가와 교제한 사실을 밝힌 그는 그 시기에 나눈 ‘거의 모든 이야기들’이 이별 후 정 작가의 작업에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두 작품이 언급된다. 하나는 2019년 11월 출간된 〈야간 경비원의 일기〉라는 소설집의 표제작이다. 김씨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에이치(H)’라는 인물이 겪고 있는 이야기 대부분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주인공과 에이치가 ‘카페 콜마인’에서 만난다든지, 에이치가 ‘밸런스만큼 시시한 건 없다’고 말한다든지, 스토킹을 기점으로 ‘나’와 에이치가 가까워지는 과정에 대한 문장이 실제 사건과 일치하며 거기에는 성적인 문장도 있다는 것이다.
본인에 대한 ‘사실과 그가 만들어낸 허구가 온통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었다’고 판단한 김현지씨는 지인과 논의했지만 ‘창작의 권리’와 충돌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따지기는 어렵다는 조언을 듣고 그 일을 잊기로 했다. 이후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뒤 치료에 전념하는 과정에서 ‘김현지, 김현지 되기’라는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사적인 이야기가 담긴 글을 사람들에게 메일로 전송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4월, 그 메일을 받아보는 지인으로부터 정 작가의 새 작품(〈브레이브 뉴 휴먼〉)에 김씨와 관련된 내용이 있으니 살펴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에는 그냥 넘겼다가 우연히 문학지에서 해당 소설의 비평을 접하고 등장인물의 이름이 현지라는 걸 알게 된다.
김현지씨는 소설 속 ‘권정현지의 이야기가 그와 사귀는 동안 제가 말한 저의 이야기임을 알았습니다. 이름이 현지일뿐더러, 제 가족사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힌다. 그에게 소식을 전했던 지인은 ‘김현지, 김현지 되기’의 메일 속 이야기와 소설 속 권정현지의 어머니 이야기가 유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김씨는 정지돈 작가에게 이메일을 보내 〈야간 경비원의 일기〉의 에이치, 〈브레이브 뉴 휴먼〉의 권정현지와 ‘나’의 관련(성)에 대해서 ‘1. 사안에 대한 인정 2. 공식적인 채널을 통한 사과 3.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원한다고 했다. 이에 대한 답장에서 정지돈 작가는 〈브레이브 뉴 휴먼〉은 오해이며 〈야간 경비원의 일기〉 속 에이치는 가능한 한 변형을 했고 김씨도 그 내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면 사과한다며 책의 절판 의지를 밝힌다.
답장을 받은 김현지씨는 〈야간 경비원의 일기〉에 대해서만 사과를 요구하기로 한 뒤 ‘1. 사안에 대한 인정을 담은 공식 사과문을 닉네임 ‘현지’로 지칭해서 출판사 인스타그램, 출판사 홈페이지, 개인 인스타그램에 게시 2. 〈야간 경비원의 일기〉에 대한 출판 중지 및 판매 회수 3. 영원히, 교제했던 실제 인물 김현지에 대한 비밀 유지’를 요구했다. 정지돈 작가는 답장을 통해 닉네임을 현지라고 지칭하면 오히려 당사자를 유추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실명 언급)에 대해 변호사를 통해 문의해보겠다는 답장을 보내온다. 얼마 뒤 사과문에 ‘현지’라고 지칭하는 부분을 수용하기 어렵고 공적으로 사과할 일이 아니라는 의견을 받았다며 입장을 바꾼다.
다시 소환된 2020년 ‘김봉곤 작가’ 사건
이 같은 주장과 정황이 담긴 김현지씨의 글이 공개되고 비난이 일자 정지돈 작가는 6월25일 자신의 블로그에 입장문을 올려 김현지씨에게 사과했다. ‘권정현지의 이름을 보고 김현지씨가 받을 충격과 아픔을 깊이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부주의로 벌어진 일이며, 제 잘못입니다.’ 〈야간 경비원의 일기〉에 대해서도 사죄하며 출판사에 판매 중단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브레이브 뉴 휴먼〉 또한 출판사와 협의하에 가능한 조치를 모두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권정현지의 이름은 여성학자와 자신의 이름을 섞어서 쓴 것이고 김현지씨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소설이 실제 삶과 일치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선 구체적인 설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런 설명 없이 자신의 삶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저로서는 납득하기 힘듭니다. 저는 〈브레이브 뉴 휴먼〉에서 김현지씨의 삶을 쓰지 않았습니다. 인공적인 존재인 권정현지에게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특성을 부여했을 뿐입니다.’
〈야간 경비원의 일기〉에 등장하는 스토킹 관련 일화도, (김현지씨뿐만 아니라 본인도)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일’이며 ‘소설에서 표현된 사건은 제가 직접 겪은 일을 실제 인물을 특정할 수 없게 변형해서 서술한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또 사과문 닉네임을 현지라고 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한 데 대해서는 ‘자칫하면 제가 사과하는 상대의 실명을 공표하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며 자신의 법률 자문도 마찬가지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몇몇 모티프만으로 개인의 삶이 도용됐으며, 소설 속 인물이 실제 인물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라고 남기기도 했다.
입장문이 올라온 당일 현대문학은 정지돈 작가의 요청에 따라 〈야간 경비원의 일기〉 판매 중단을 알렸다. 〈브레이브 뉴 휴먼〉을 출간한 은행나무출판사는 당사자에게 사과하며 후속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정된 사인회와 북토크 등 관련 행사도 모두 취소되었다. 합의할 사안으로 ‘절판, 판매, 수정 후 재출간, 회수’ 등을 언급했다.
이번 사태는 몇 년 전부터 문학계 화두였던 재현의 윤리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내가 한 말, 내가 겪은 일 그것도 굉장히 내밀한 이야기가 타인의 소설에 쓰였을 때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그 사실에 대해 독자는 작가에게 어떤 요구를 할 수 있을까. 작가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작품에 반영할 수 있나.
당장 2020년 비슷한 일로 곤욕을 치른 김봉곤 작가가 소환되었다. 그해 7월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이기도 한 김 작가의 단편소설 〈그런 생활〉에 ‘C 누나’로 등장한 이의 실제 모델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SNS에 글을 올리며 사적 대화 무단 인용 논란이 일었다. “우리가 했던 많은 대화(카카오톡) 중 성적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을 그대로 쓴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라는 게 문제 제기 당사자의 주장이었다. 추가로 김 작가의 소설집 〈여름, 스피드〉의 표제작 속 ‘영우’가 본인이고 작가에게 보낸 메신저 내용이 소설 도입부에 인용됐다고 주장하는 이도 등장했다.
자전적 성격의 ‘오토픽션’ 형식을 빌려 퀴어소설을 써온 김봉곤 작가는 한국 문학의 ‘특별한 성취’로 불리며 줄곧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런 그가 사과했고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반납했으며 문제가 된 두 소설집의 판매도 중지되었다. 오토픽션이라는 문학 양식에 대한 리뷰도 이어졌다. 2021년에는 김세희 작가의 〈항구의 사랑〉과 단편소설 〈대답을 듣고 싶어〉의 실제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등장해 ‘아우팅’을 포함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세희 작가는 두 소설이 모두 허구이며 현실에 기반했더라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밝혔으나 결국 〈항구의 사랑〉은 판매 중단됐다. 올해 초,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작 ‘호모 헌드레드’의 경우에도 당선자의 전 직장 동료들의 이야기가 무단으로 인용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재현의 윤리를 다루는 일은 늘 까다롭다. 재현의 대상이 된 당사자로서는 치명적이지만, 픽션의 특성상 창작자의 나쁜 의도를 입증하기 힘들다. ‘자기 반영’이라는 소설의 특징도 일을 어렵게 만든다. 실제로 소설가들이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작품 속 사건이나 인물이 실제인지’ 여부다. 익명을 요청한 문학평론가 A는 “현지라는 이름을 사용하거나 당사자가 생각하기에 자기 얘기로 충분히 짐작하도록 빌미를 준 일 자체(에이치)는 부주의했다는 비판을 피해 가기 어렵다. 하지만 그 부분을 괄호 치고 보자면 자기가 체험한 일에 대해서 쓰지 않는 산문가는 없다. 경험이 반영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그런 면에서 재현의 윤리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경험을 쓸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걸 써도 되는지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생산적인 논의가 되려면 재현의 감각이나 윤리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지돈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이 가진 특성을 짚는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문학평론가 B는 “실제 사람들의 이름을 작품에 가지고 오거나, 허구인지 실제인지 혼돈스럽게 하는 게 정지돈의 스타일이다. 그 문제가 재현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동안 정지돈 작가의 스타일이 실험적이고 독특하다는 식의 평가가 있었지만 재현의 문제를 미묘하게 건드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고려는 적었던 것 같다. 형식에 호의를 가지면서도 형식이 가질 수 있는 문제적 지점들에 대해 덜 민감했던 것인데, 당사자가 이야기를 꺼내며 문제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윤리적’으로 재현한다는 건 무엇일까
실제 정지돈 작가의 글에는 그의 주변인들이 실명으로 자주 등장한다. 읽는 독자는 실재인지 아닌지 자주 헷갈린다. 〈야간 경비원의 일기〉 소개글에도 ‘실재하는 것들에서 일부분을 차용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내는 글쓰기 방식을 즐겨 사용하는 정지돈’이라는 묘사가 있다. 2013년 〈문학과 사회〉의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등단한 정 작가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지우는 글쓰기’ 등의 수식어로 설명되곤 했다. 〈문학과 사회〉 2017년 겨울호에 실린 강동호 문학평론가와 정지돈 작가의 대화에서 강동호 평론가 역시 “삶과 텍스트가 연동되어 있는 방식, 그것을 구현해내는 (정)지돈씨만의 방법과 태도를 ‘인용’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지돈 작가는 당사자에게 사과하고 그로 인해 (일부) 책의 판매 중지를 결정했으나 무단 도용은 아니라는 입장을 확실히 했다. 〈야간 경비원의 일기〉의 ‘스토킹’ 부분은 본인도 함께 겪은 일이고, 〈브레이브 뉴 휴먼〉의 현지는 김현지씨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같이 겪은 일이면 써도 되나, 상대가 겪은 일이면 동의를 구해야 하나. ‘윤리적’으로 재현한다는 건 과연 뭘까. 장은수 출판문화평론가는 타자가 내 삶을 이야기할 때, 사전 허락을 받는 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내 인생은 내 것이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다종다양한 이야기들은 내 것이 아니라 공동의 것이다. 타인이 나에 대해 경험한 것은 타인의 것이다. (타인의 삶을) 글로 쓸 때 긍정적인 사이드 이펙트(부작용)든 부정적인 사이드 이펙트든 작가가 예측하기 불가능하다. 그 자체로 무리일 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작가가 모르는 바는 아니니 타인의 삶을 재현할 때는 굉장히 신중하고 겸손해야 한다.”
‘재현’에서 신중하고 겸손한 접근은 무엇일까. 소설 〈침묵주의보〉 〈젠가〉 〈정치인〉의 정진영 작가는 사회문제를 다룬 소설을 많이 써왔다. 민감한 내용을 소재로 다루기 때문에 근거와 논리를 확보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원전 비리를 다룬 〈젠가〉를 쓸 때 고등법원의 판례를 뼈대로 쓰는 식이었다. 그는 “무엇을 쓰든 자유지만, 그로 인해 벌어질 결과는 본인 책임이라는 게 내가 생각하는 표현의 자유다. 소설이 누군가의 삶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은 한번 세상 밖으로 나가면 거둬들이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소설로 다뤄진 누군가의 사생활이 상대방을 특정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라면 작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창작의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을 같이 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런 경우라도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거나 사회상규상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의 표현까지 막는 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정도의 표현까지 막는 것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 다른 소설가 A는 ‘김봉곤 작가 사태’를 회상하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번 일은 그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다시 김봉곤 작가가 이야기되는데, 당시 이어진 재판에서 그가 승소했다는 사실은 많이 안 알려져 있다. 당시 벌어진 일들에 대한 반성 혹은 비평적 담론이 문학계간지 중심으로 있었으나 바깥으로 발화되지는 않았다.” 김봉곤 작가의 소설 속 ‘C 누나’라 주장한 최 아무개씨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무단 인용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당시 법원은 최씨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인용해 소설을 집필하고 출판하는 것에 동의해주었다고 판단했다. 사법적 판단이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법적으로는 무단 인용이 아니었다는 결론이다. 전승민 문학평론가는 최근 출간된 〈문학들-2024년 여름호〉의 ‘퀴어 일인칭을 위한 변론-김봉곤론’에서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작가와 그의 소설 세계가 입은 피해는 어떤 방법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취소되거나 만회될 수 없다’라고 적었다.
양상은 다르지만 과거부터 비슷한 사건은 반복되었다. 대표적으로 2007년, 소설가 공지영의 전남편 이 아무개씨가 공 작가의 〈즐거운 나의 집〉 연재를 앞두고 “공씨와 이혼할 당시 ‘혼인 중 일어났던 일에 대해 실명으로 허위 사실을 발표할 수 없다’는 합의서를 작성했으나 공씨가 이를 위반했다”라며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1994년에는 재일교포 소설가 유미리가 발표한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의 실제 인물이라 주장하는 이가 등장해 사생활 침해를 문제 삼았고 결국 책은 판매 금지되었다. 2009년 자전소설 〈나의 투쟁〉을 출간한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도 가족들의 사생활을 노출했다가 소송을 당했다.
소설만 그럴까? 실화를 다루는 대중문화 콘텐츠도 재현과 관련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영화에서 빈번하다. 지식재산권 문제를 주로 다루는 한 변호사는 사생활, 즉 ‘라이프 스토리’에는 저작권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화를 다룬 영화가 개봉할 때 관련 유족이나 당사자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기도 하는데 대형 자본이 들어가기 때문에 리스크를 없애는 차원이다. 영화든 소설이든 재현에서 보통 저작권 침해,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 여부로 법률적 판단을 한다. 정지돈 작가의 경우 저작권 이슈는 아니고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여부를 살펴야 하는데 그 경우 피해 당사자의 이야기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 두 사람의 의견이 다른 것 같다.”
‘손절’은 해결책이 될 수 있나
창작의 윤리를 이야기할 때 과거와 달라진 점은 피해를 주장하는 당사자가 대체로 SNS를 통해 공론화한다는 점이다. SNS의 속성상 빠르게 퍼져 나가고 타격도 세게 입는다. 사과와 판매 금지로 이어지는 대처도 비교적 빠른 편이다. 2010년대 중반, SNS를 통해 ‘문단 내 미투’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며 ‘정치적 올바름’이 새로운 ‘문학성’으로 자리 잡게 된 점도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끼친 걸로 보인다. 피해자 혹은 당사자성이 강조되던 흐름과도 이어진다.
어쩌면 변화된 독자의 온도를 문단이나 출판계가 못 따라가는 건 아닐까? 문학평론가 A는 “정치적 올바름이 지배적 가치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창작의 자유가 무한대로 허용될 수 있는 분위기는 당연히 아니다. 특히 여성 독자들의 목소리나 감수성이 커진 상황에서 이런 문제를 섬세하고 정교하게 다뤄야 하는 작가의 의무는 훨씬 커졌다. 이 상황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작가들에게도 물어야 하지만 한쪽에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작가, 독자, 출판사가 질문을 나눠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간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출판사의 대응에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작가의 동의를 전제로 하지만 사과와 동시에 판매 금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숙의의 시간’은 생략되기 마련이다. 캔슬 컬처(유명인이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했을 때 SNS의 팔로를 취소한다는 뜻), 즉 ‘손절’ 문화가 연상되는 대응 방식이 과연 올바른 해결책인지 재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늘 제자리인 것은 아니다. B 문학평론가는 김봉곤 작가 사태 이후로 작가들이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소설에 어떤 자료를 참고하거나 누구의 이야기를 빌려오면 그걸 각주로 처리하면서 정황을 기록하는 문화가 정착되었던 것 같다. 또 지난번과 달리 이번 사태에서 소수의 의견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데 이는 생산적인 담론의 공간을 열어보자고 제안한 피해 당사자가 현명하게 대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앞서의 경험이 쌓여서 생긴 분위기이기도 하다.”
김현지씨의 공론화 이후 문제 제기의 통로가 된 SNS를 중심으로 전현직 평론가를 비롯해 연구자, 소설가, 누리꾼 등이 각자의 입장을 밝히며 갑론을박을 이어갔다. 관련 보도, 입장문을 한곳에 모아 아카이빙하는 움직임도 있다.
앞서 김씨는 이 같은 논의에 ‘문학 관계자’의 참여를 요구하며 밝혔다. ‘정지돈씨도 저도 공론장에 서 있고 각자의 입장을 밝히며 창작 윤리와 사생활 도용의 충돌, 차용 인물에 관한 재현 윤리, 아카이브 작업의 링크 실패 등에 관한 이야기의 땔감이 될 각오를 마쳤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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