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말이 곧 법이기를

2024. 7.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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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 어느 여름날 저녁에 S학교 교감 선생님의 안내로 수녀원을 방문했다.

"선생님, 저희는 말이 곧 법입니다."

말이 곧 법인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믿음이 깔려 있는 사회다.

말이 곧 법이 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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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걸 작가.

30대 중반 어느 여름날 저녁에 S학교 교감 선생님의 안내로 수녀원을 방문했다. 수녀님을 직접 대면하는 건 처음이라 다소 긴장했는데 밝은 미소로 반겨주셔 마음이 편안해졌다. 교육현장에서 생성되는 사례를 중심으로 담소를 나누는 중간중간에 그간의 교육실적이나 특기, 가정사 등을 곁들여 물어보셨다. 찻잔이 비워질 무렵 수녀님께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월 ○일부터 근무해 주세요" 하고 말씀하셨다. 미처 심경 정리를 못해 머뭇거리는 필자를 보시고 수녀님께서 결정적인 말씀을 해 주셨다.

"선생님, 저희는 말이 곧 법입니다."

말이 곧 사령장이고 임용예정증명서라는 말씀이시다. 그 말씀이 너무 좋았다. 이렇게 진솔하신 분들과 더불어 생활하는 건 축복이라는 믿음으로 필자는 S인이 됐다.

하루 생활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없이 주고받는 그 말들 속에 얼마나 진실성이 담겨 있고 생명력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남은 남이라서 그렇다 해도 가족 간에도 쟁의가 벌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이니 우리는 지금 모략과 배신을 서슴지 않는 불신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피가 모자라서 죽는 게 아니라 돌지 않아서 죽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흐르지 않는 세상은 희망이 없다. 아무리 첩첩산중에 있어도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세상이 메마르고 황폐화되면 선한 사람들이 설 곳을 잃는다. 말이 곧 법인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믿음이 깔려 있는 사회다. 사랑, 기쁨, 희망, 행복은 믿음의 텃밭에서만 자라나서 꽃이 피는 씨앗들이다. 우리 사회에 믿지 못해 자라는 무성한 잡초들을 뽑아내고 맑은 이슬을 모아 눈과 귀를 씻고 미소 띈 얼굴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자. 불신의 사회를 치료하려면 더 사랑하는 일밖에 없다. 말이 곧 법이 되는 그날까지.

류인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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