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라떼’의 변명

최정희 아리랑TV 미디어홍보부장 2024. 7. 24. 00:3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작년 출생자 수가 23만명이라고 하는데, 나는 한 해에 102만명 사상 최대의 출생자 수를 기록한 해에 태어났다. 어딜 가나 애들이 흔했고 화장실이든 매점이든 어디서나 줄을 서야 했다. 한 반에 60명이 있다 보니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소리는 ‘실내 정숙’이었다. 떠드는 애들은 칠판에 이름이 적혀 얻어맞거나 청소를 해야 했다. 그래도 효과가 미미했는지 어느 날 선생님은 교실에서 단 한마디라도 하는 사람은 모두 이름을 적으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그날부터 교실은 조용해졌지만 아침에 눈뜨는 순간부터 할 말이 많은 중학생들에게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원망스러웠다. 숫자가 많다 보니 대접 못 받고 자란 세대였다.

지금의 MZ세대들은 X세대가 경제성장기에 이른바 ‘꿀 빤 세대’라고 부러워할지 모른다. 하지만 X세대도 입시와 취업에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다. 취업할 시기에 폭탄처럼 외환 위기를 맞았다. ‘라떼’(나 때) 이야기가 되겠지만, 내가 다니던 직장은 30%를 감원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떠난 이들의 업무까지 떠맡고도 이 엄동설한에 월급 받는 게 어디냐며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3년간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돌아온 남자 동창들은 아직 남아 있던 군기를 바쳐 충성할 열의에 가득 차 있었지만 직장을 찾지 못했다. 마침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나온 아버지와 같이 쉬게 됐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한 해에 태어난 102만명이라는 그 흔한 애들 중 하나였던 우리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반항하거나 속을 썩이면 얻어맞거나 혼나거나 외면당했다. 그렇게 자란 우리에게 상명하복은 당연한 문화였다. 그게 바람직하다는 말이 아니라 우린 그렇게 살짝 소금에 절여진 듯 주눅 들어 세상에 나온 셈이다.

최근에 만난 대기업 팀장이 푸념을 했다. “한 팀원이 오너가 나를 통해 내린, 전혀 부당할 게 없는 지시를 거부하더라. 다른 팀원은 나한테 통보도 없이 부서를 옮기더라. 요즘 MZ세대들은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당돌하고 당당하냐”고 했다. 그와 후배들 험담을 하면서 한편으로 그들이 부러운 생각이 드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나도 상사에게 ‘그건 아닌데요’라고 말할 줄 알아야겠다. 지금 말고 정년 즈음에. 당장 급한 것은 ‘이걸요? 내가요? 왜요?’라고 말하는 MZ들에게 뭐라고 응수하는 게 최선일까. ‘좀 해줄래? 싫다고? 왜?’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