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기 칼럼]지구 종말 앞당기는 기술 발전

기자 2024. 7. 2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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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전기차 EV3는 지난 6월부터 사전계약을 시작해 3주 만에 1만대를 넘어서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회사 측은 연간 판매 목표량을 2만5000대로 잡았는데, 이미 1만5000대 이상 주문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전기차는 2021년 23만대에서 지난해 55만대로 두 배 이상 급증했고, 올해는 74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EV3는 1㎾h의 전력으로 5.1㎞를 갈 수 있다. 연간 2만㎞를 주행한다고 가정하면 전력 소모량은 3921㎾h이다. EV3는 전비가 2등급으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승용 전기차 중 덩치가 가장 큰 EV9은 전비가 4등급이다. 1㎾h로 갈 수 있는 거리가 3.8㎞에 불과하다. 1년 주행거리가 2만㎞인 EV9은 전력 5263㎾h를 먹어야 한다.

한국전력 전력통계월보를 보면 지난해 가정용 전력 사용량은 총 8만2348GWh였다. 이를 2277만가구로 나누면 한 가정에서 3782㎾h를 사용한 셈이다. EV3는 2만㎞를 주행하는 동안 한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전력을 쓴다. EV9은 평균적인 가정보다 1.4배가량 많은 전력을 사용한다. 한국 전체 자동차의 절반가량인 1500만대가 모두 전기차로 바뀌면 어떻게 될까. 전비를 ㎾h당 5㎞, 연평균 주행거리를 2만㎞로 가정하면 1500만대가 쓰는 전력은 6만GWh로 가정용 전력 사용량에 근접하게 된다.

전기차는 전에 없었던 새로운 전력 수요처인데,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데이터센터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서버 컴퓨터와 네트워크 회선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최근 널리 쓰이는 인공지능(AI)은 전력 소모가 막대하다. 구글 검색을 할 때 소요되는 전력은 0.3Wh인데, 생성형 AI 챗GPT는 질문당 2.9Wh를 소비한다고 한다. 인구의 절반인 2500만명이 10개씩 챗GPT에 질문을 한다면 하루 전력 사용량은 72만5000㎾h이다. 하루에 전기차 6만6000여대가 54.8㎞씩 주행하면서 쓰는 전력과 맞먹는다.

정부는 지난 5월 말 공개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에서 2038년 전력 설비를 157.8GW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투자 확대와 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 증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한다고 판단했다. 부족한 설비 10.6GW의 절반가량은 대형 원전 3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를 세워 충당하기로 했다. 전기본에 원전 신규 건설 계획이 들어간 것은 9년 만이다. 지난해 30.7%였던 원전 발전 비중은 2038년 35.6%로 늘어나게 된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을 2022년 23GW에서 2030년 72GW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있다. 하지만 발전 비중은 21.6%로 원전(31.8%)에 한참 못 미친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영국은 2022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40%였고, 독일은 2023년 50%를 넘어섰다고 한다. 한국이 8년 사이 재생에너지 비중을 3배로 늘린다고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원전을 제외한 ‘RE100’(재생에너지 100%)을 기업들에 요구하는 글로벌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

전기 없이 한시도 살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전기는 인류에게 보다 편한 생활을 선사하지만, 사용이 늘어날수록 지구를 병들게 한다. 발전소 건설에서 발전, 송배전, 사용, 저장, 사용후 처리 등 모든 과정에서 자연을 파괴한다. 친환경이라는 재생에너지도 산과 땅, 바다를 파헤친다. 최근 리튬 배터리 공장 화재에서 보듯 인명을 대량으로 앗아가기도 한다. 화재사고 4건 중 한 건은 전기로 인한 것이다. 원전은 사고가 나면 피해가 막심하고, 폐기물 처리 해법도 찾지 못하고 있다.

인류를 구원할 것으로 각광받았던 기술 발전은 파멸로 몰아넣을 우려가 점점 더 커진다. 파국을 막을 기술을 개발하면 된다는 낙관론이 있다. 그러나 기술은 언제나 환경을 파괴하는 데 몇발짝 앞섰고, 복구하는 기술은 한참 뒤에 따라온다. 지구를 보전하려는 속도는 파괴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전력 공급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수요관리에도 힘써 전기를 적게 쓰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한다. 자동차는 연비나 전비가 높은 게 좋은데, 차를 타지 않고 걷는다면 더 좋을 것이다. 전기뿐 아니라 물과 식량도 적게 소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편리함에 길들여진 현대인이 하루아침에 생활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후손들과 지구의 미래를 위한 의지가 필요하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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