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소상공인 대책, 이런 식으론 안 된다
지난 1일 한국은행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양부남 의원실(더불어민주당)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현재 자영업자 대출 연체액은 10조8000억원, 연체율은 1.66%로 역대 최고였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는 현 정부 들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15일 공개된 국세통계 기준으로 연간 폐업 사업자 수는 비법인의 경우 2019년 85만명에서 2022년 80만명까지 줄었다가 작년에 91만명으로 늘었다. 그중 폐업 사유가 ‘사업부진’인 경우도 2019년 35만명에서 2022년 38만명으로 소폭 늘었다가 작년에 45만명으로 급증했다.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소상공인 경제생태계가 바닥부터 붕괴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런데 정부가 최근 발표한 25조원 규모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대책은 한시적 금융 지원에 치우쳐 상황의 심각성에 비하면 한참 불충분해 보인다. 전환보증이나 대환대출은 상환기간을 연장하고 이자를 줄이는 점에서 도움은 되겠으나 미래로 부담을 미루는 임시방편이므로 보다 근본적 대책으로 보완돼야 한다. 정부는 부실 차주의 채무 조정을 돕는 새출발기금을 30조원에서 40조원으로 늘릴 계획이나 추가 대출을 막는 신용 불이익 등 문턱을 둔 탓에 올해 6월 말 현재 채무조정 신청 채무액이 11조7000억원에 그치고 있고 채무조정이 이뤄진 채무액도 매입형(원금 감면) 1조9000억원 등 합계 3조2000억원이 전부다. 원금 감면 폭도 키워야 하나 먼저 문턱부터 낮추지 않으면 그나마도 소용없을 법하다.
정부 대책에서는 고정비용 경감 대책으로 6800억원이 배정되었다. 그런데 전기료 지원의 경우 중위매출(연간 6000만원) 기준이 문턱이 되는 바람에 예산 소진이 더디다. 임대료 지원은 ‘착한 임대인’의 자발성에 기대는 까닭에 한계가 뚜렷했다. 배달료 지원 역시 정작 소상공인이 받을 혜택을 플랫폼 사업자가 우월한 교섭력을 이용해 감소시킬 수 있음에도 당국이 자율 규제에 집착하면서 일찌감치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일자리 미스매치를 완화한다는 폐업 소상공인 대상 취업 지원 프로그램은 재원 조달 계획조차 명확지 않다. 선별과 자율, 긴축에 볼모로 잡힌 정책들로는 전망이 어둡다.
소상공인 과잉부채는 우리 경제가 자영업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코로나19 경제위기와 뒤이은 침체 국면을 견뎌온 데에 따른 귀결이다. 관건은 국가책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이다. 적어도 손실보상법 시행 이전을 포함해 소상공인 영업에 영향을 미친 행정 조치 전체 기간에 대해 이제라도 업종 선별 없는 포괄적인 소급 적용으로 국가가 제도적 손실 보상의 미진했던 부분부터 마무리지어야 옳다. 면책 후 사업 유지의 어려움 때문에 기피되기도 하지만 개인파산, 개인회생 등 공적 채무조정제도를 개선해 신용회복을 적극 도와야 함도 물론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횡재이익’을 누린 부문에 횡재세를 부과해 소상공인 등이 입은 ‘횡재손실’을 지원하게끔 하자. 정책자금 대출은 합리적인 기준을 적용해 탕감을 추진하자. 그런 다음 남은 소상공인 채무 가운데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수준까지 국가가 인수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할 만하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국채를 활용해 소상공인 채무를 국가채무로 전환하고 공동체 모두가 증세로 상환 부담을 나누도록 하자. 국채가 그와 같은 목적으로 쓰일 때 그것은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의 표현대로 ‘국가적인 축복’이 될 수 있다. 역경 속 국가적 리더십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한편 소상공인 보호에 있어서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와 같은 종속적 자영업자의 노동자성이나 하도급 거래에서의 원·하청 간 교섭력의 불균형도 중요한 이슈다. 그러나 가맹점주 단체에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려고 했던 가맹업법 개정안은 정부·여당의 반대로 지난 21대 국회에서 폐기되었다. 하도급법 개정은 그간에 시민사회에서 납품단가 조정제도와 인건비의 납품단가 연동 등을 제안해왔으나 역시 입법이 미비하다. 대형 유통점 및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도 제대로 된 소상공인 대책이라면 갖추어야 하는 요소들이지만 갈 길이 멀다.
정부의 이번 소상공인 대책은 소상공인들이 경제 활동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온전히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그와 같은 구조적 해법을 회피한다. 자영업 부채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가적 리더십은 기대할 수도 없다. 온통 부실한 처방에 정책 효과마저 의심된다. 밑바닥 상권이 무너져 내리는데 심지어는 내수 회복을 위한 적극적 총수요 관리조차 등한시한다. 그 어디에도 국가는 없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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