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 도전 마두로 “내가 지면 베네수엘라는 피바다” 협박

김동현 기자 2024. 7.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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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 22일 북부 항구도시 라과이라 유세에 참석해 지지자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마두로는 오는 28일 대선에서 3선에 도전한다./AP 연합뉴스

오는 28일 대통령 선거에서 세 번째 임기에 도전하는 니콜라스 마두로(62)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이달 최근 한 유세에서 “내가 대선에 패배할 경우 동족 간 내전이 벌어져 나라가 피바다가 될 수 있다”고 발언했다고 AP가 22일 보도했다. “베네수엘라의 운명이 우리의 승리 여부에 달려 있는데, 파시스트들이 일으킬 피바다 동족상잔의 내전을 피해가려면 선거 역사상 최대의 압승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마두로의 발언은 선거를 앞두고 야권 후보에게 크게 뒤지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는 상황에서 나왔다. 이에 따라 야권을 탄압하고 선거를 정권 연장의 도구로 악용해오며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온 마두로가 선거 불복 장치를 마련했다는 관측 속에 선거 후 결과에 관계없이 베네수엘라 정국이 대혼란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마두로는 베네수엘라 좌파 정권의 기틀을 다진 우고 차베스가 임기 중이던 2013년 사망한 뒤 그의 후계자로 대통령직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집권해왔다.

이번 대선은 마두로와 야권 단일 후보인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74)의 양자 구도다. 외교관 출신의 우루티아는 반(反)마두로 진영이 내세운 대타다. 당초 야권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57) 전 국회의장이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두로 정권은 지난 1월 마차도에게 15년간 피선거권을 박탈했다. 이에 야권연대 소속 정파들이 단일 후보로 우루티아를 내세웠다. 우루티아는 아르헨티나 주재 대사 등을 지낸 것 외에는 인지도가 거의 없는 인물이었지만, 현지 여론조사업체 ORC 컨설턴트가 지난달 22~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7%로 마두로(14%)에게 앞서는 등 높은 지지율을 보여주는 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반면 친여 매체들을 중심으로 마두로가 50%대의 지지율로 20% 안팎의 우루티아를 앞선다는 조사도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 주체의 성향을 감안하더라도 2013년 집권 뒤 야권을 강력하게 탄압하며 통치 기반을 구축해온 마두로 입장에선 충격적인 수치였다. 차베스와 마두로로 이어진 좌파정권 사반세기를 종식시키려는 민심이 결집한 것으로 풀이됐다. 우루티아는 이번 대선에서 극심한 생활고를 가져온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다. 선심성 정책의 도구로 활용돼온 사회서비스의 정상화도 약속했다.

마두로 정권하에서 탄압받고 망명 중인 정치인들을 귀국시키고 훼손된 민주주의 시스템을 재건하겠다고 공약했다. 차베스·마두로 체제하의 각종 폐해를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다. 우루타이는 경제적으로는 친기업·친시장을 지향하고 러시아·중국과 밀착한 현재의 권위주의 외교노선에서 탈피해 미국·서방과의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에 맞선 마두로는 기존의 소득 재분배와 무상복지 등 포퓰리즘 정책과 함께 노후해 상당수 가동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진 석유 시설의 현대화 등을 공약했다. ‘차베스·마두로 25년’을 겪은 민심이 전례없이 반(反)마두로로 결집하는 양상을 보이자, 마두로가 급기야 ‘내가 뽑히지 않으면 피바다가 될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을 할 정도로 상황은 마두로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마두로는 야권 지지 유권자들의 투표소행을 막기 위해 공권력을 최대한 발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래픽=김성규

과거 베네수엘라는 풍부한 천연자원과 ‘뷰티 산업’으로 대표되는 높은 생활 수준, 진보와 보수가 민심의 향배에 따라 정권을 주고받는 양당 체제가 정착된 남미의 모범 국가로 꼽혔다. 그러나 1999년 군부 출신 우고 차베스가 집권한 뒤 전혀 다른 나라가 됐다.

주요 기간 산업을 국유화했고, 각종 무상 복지 정책에 세금을 쏟아부었다. 이런 포퓰리즘 정책으로 서민과 빈곤층의 지지는 확보했지만 국가 경제는 파탄일로를 걸었다. 특히 차베스 사망 직전 후계자로 지목돼 권좌에 오른 마두로는 베네수엘라 경제를 더욱 수렁에 빠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재임 중 베네수엘라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최고 6만5000%까지 치솟았다. 생활고를 버티다 못한 국민은 나라를 등지고 난민이나 불법 이민자가 됐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베네수엘라 인구 약 30%인 770만여 명이 고국을 탈출했다.

그래픽=김성규

이런 상황에서 마두로는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으로 극빈층을 지지층으로 묶고, 비판적 정치인과 시민사회인사들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했다. 그 결과 미국·유럽연합(EU)의 경제 제재 대상이 되며 경제난이 가중됐다. 그런 상황에서도 2018년 대선에서 68%의 높은 득표율로 승리했지만, 미국과 EU를 포함한 포함한 대다수의 서방 국가는 전례없는 부정 선거로 규정하고, 마두로가 아닌 후안 과이도 당시 국회의장을 국가 원수로 인정해 ‘1국가 2원수’ 체제라는 혼란상이 벌어지기도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야권 인사들은 마두로 정권으로부터 감시·협박·폭행·살해 위협을 받고 있으며, 특히 여성 가족에 대한 자의적 체포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두로 정권의 폭주에 대해 같은 핑크타이드(중남미 좌파진영) 지도자로부터도 ‘경고’가 나왔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21일 기자들과 만나 “마두로의 피바다 발언에 공포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마두로는 베네수엘라가 정상화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모두가 존중하는 선거 절차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패배하면 집으로 돌아가 다른 출마 기회를 모색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중남미 좌파의 대부’로 이웃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이 큰 룰라마저 ‘민심에 역행하지 말고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라’고 마두로에게 경고한 것이다.

☞니콜라스 마두로

노동운동가 출신 베네수엘라 대통령. 운수노조위원장이던 1992년 쿠데타 실패로 수감된 우고 차베스의 석방 운동을 주도하면서 차베스의 최측근이 됐다. 차베스 정권 출범 뒤 2000년 국회의원에 당선해 정계에 입문했고 2006년부터 6년간 외무장관을 지내면서 반미 외교 정책을 주도했다. 2013년 암 투병 중이던 차베스로부터 대통령 승계 후보자로 공식 지명됐고, 차베스 사망 뒤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후 2018년 재선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공권력을 남용하고 야권 진영을 무리하게 탄압해 부정선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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