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당겨쓴 예산…하반기, 실탄이 없다
연간 대비 63.6% 상반기 집행
도로·철도 등 SOC에 18조원
주요 기관 ‘상고하저’ 전망 속
내수 부진 대응 카드 마땅찮아
세수 결손 맞물려 이자비용 ↑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올해 상반기에 연간 계획 대비 63%에 달하는 예산을 사용했다. 재정을 당겨 쓴 만큼 하반기에 경기가 나빠지더라도 정부가 대응하는 데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다. 내수 부진의 장기화 속에 추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23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2024년 상반기 신속 집행 추진현황 및 향후 계획’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상반기에 357조5000억원의 재정을 집행했다. 연간 재정 집행 계획(561조8000억원) 대비로는 63.6% 규모다. 중앙정부 기준으로는 상반기에 167조5000억원을 집행해 연간 계획(252조9000억원) 대비 66.2%의 집행률을 기록했다.
정부가 상반기에 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입한 곳은 약자복지·일자리·사회간접자본(SOC) 사업으로, 109조5000억원 예산 중 74조3000억원을 썼다. 특히 도로(5조3000억원), 철도(5조8000억원) 등 SOC 분야에 총 17조9000억원의 예산을 사용해 집행률이 연간 계획 대비 71.4%에 달했다.
이 같은 재정 조기 집행은 2002년부터 이뤄졌다. 상반기에 재정을 투입해 투자·소비 등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상반기에 경기가 나쁘고 하반기에는 좋아지는 ‘상저하고’가 예상되는 경우 경기를 진작시키는 역할로 주로 활용됐다.
그러나 경기가 상반기에 좋지만 하반기에는 나쁜 ‘상고하저’에도 관행적으로 재정 조기 집행이 이뤄졌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상고하저’는 여섯 차례였지만, 60% 중반대의 재정 집행률을 기록했다. 예정처는 “연례적으로 재정의 60% 이상을 상반기 중 투입하는 방식은 상·하반기 경기 여건을 자세히 고려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올해에도 주요 경제 전망 기관들은 ‘상고하저’를 예상한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상반기 2.9%, 하반기 2.2%로 제시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상반기 2.9%, 하반기 2.3% 각각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경기 상황을 낙관하고 있지만 내수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며 “자영업자의 신용위기와 겹치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 교수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정부가 어려운 내수를 진작시키기 위한 추가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상반기 예산 조기 집행으로 이자 비용이 늘어나는 점도 부담이다. 기재부는 세입과 세출 간 시차로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할 경우, 한은에서 일시 차입하거나 재정증권을 발행한다. 한은 일시 차입과 재정증권 발행은 일반적으로 상반기에 집중됐다. 이는 8월 말 법인세 중간예납 등으로 주요 세수가 하반기에 납부되는 반면 재정 투입은 상반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세수결손으로 인해 한은 일시 차입과 재정증권 발행 규모가 162조1000억원까지 늘어났다. 이 중 70.1%(113조7000억원)가 상반기에 조달됐다. 고금리 기조와 맞물려 2022년 667억원이던 이자비용은 4244억원으로 치솟았다. 예정처는 “기재부는 경제·재정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정의 조기 집행 제도를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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