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름 갤러리 키워드는 ‘원로의 품격’
- 금정구 머지 ‘원로작가 3인展’
- 수영구 금련산갤러리 ‘강선보展’
- 지역 원로작가 작품 만날 기회
부산을 터전으로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해 온 부산 미술계 원로의 작품을 만나는 전시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오랜 기간 단단하게 다져진 연륜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안창홍의 50년
밀양 출신 안창홍(71) 작가는 중학생이 될 무렵 부산에 정착했다. 30대 후반 다른 곳으로 떠나기 전까지 그의 둥지는 부산 중구 옛 미문화원(현재 근현대역사관) 뒤 2층집이었다. 그의 젊은 날을 대변하는 중구에서 열리는 기획전 ‘안창홍. 드로잉, 오래된 미래’는 그래서 더 뜻깊다.
부산중구문화원이 준비한 이번 전시에서는 50여 년 안창홍 작품 세계를 시대별로 망라했다. 1층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2020년 이후 최신작이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그리스, 인도에서 길어 온 이미지와 감각은 흑과 백 드로잉을 거쳐 되살아난다. 나무액자에 담긴 A4만 한 드로잉 작품은 1930년대 건축물인 중구문화원과 묘하게 엮여 든다.
사회 비판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소비자본주의를 꼬집은 봄나들이 연작과 ‘우리도 모델처럼’, 욕망 괴물을 형상화한 ‘여행을 떠나는 이무기’ 등은 현실 사회의 병폐를 작가만의 언어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그의 문제의식은 2020년대 들어 시작한 유령패션 연작으로 이어진다. 작품 속에선 정작 사람은 사라지고 껍데기에 불과한 옷만 남았는데, 뚝뚝 흐르는 액체로 둘러싸여 마치 유령처럼 보인다. 작가는 본질인 사람은 사라지고 자본주의만 남은 현실을 꼬집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2m에 달하는 유령패션 설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문화원에 딸린 복병산작은미술관에서는 그의 설치 작품이 주인공이다. 목조 창고였던 미술관 건물에 걸린 안창홍의 MASK연작은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어우러진다. 전시는 오는 10월 11일까지.
▮작가를 ‘다큐레이팅’ 하다
부산 금정구 복합문화예술공간 머지(MERGE)는 올해 부산 원로 작가 ‘다큐레이팅 프로젝트’에 나섰다. ‘다큐레이팅’은 다큐멘터리와 큐레이팅의 합성어인데,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다큐멘터리와 전시로 기록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해 전위예술가 5명을 대상으로 다큐레이팅에 나선 머지는 올해는 지역 원로 작가 3명을 집중 조명하기로 했다.
첫 주인공은 정철교(71) 작가다. 작가는 오는 26일까지 열리는 전시 ‘사라진 마을, 사라질 마을에 대하여’에서 부산 기장군 신리마을에 집중한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마을의 현실을 강렬하게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표현한다. 강렬한 색채는 마을의 불안한 현실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작가는 이미 같은 운명을 겪은 골매마을의 풍경을 나란히 보여줌으로써 영원한 소멸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머지는 전시와 더불어 작가 작품세계를 담은 15분가량 영상도 공개한다.
머지는 이어 10월엔 예유근, 11월 허종하 작가 다큐레이팅을 계획하고 있다. 성백 대표는 “지난해 ‘전위예술 20년을 기록하다’는 전시를 준비하던 중 김춘기 작가의 작품을 구하기 어려워서 애를 먹었다. 지역에서 행위예술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자료가 너무 없어 아쉬웠다”며 “원로 작가의 전시도 열면서 영상 기록을 통해 DB도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순의 작가를 만나다
8월 4일까지 부산 수영구 금련산갤러리에서는 강선보 구순 기념 개인전이 열린다. 강선보(90) 작가는 부산사범대 미술과를 1기로 졸업하고 부산·경남에서 교편을 잡으면서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해 왔다. 그는 1960년대 구상미술에 맞서 현대미술이 격동하던 시기 철판 파이프 플라스틱 등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한 실험적 작품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그러다 1980년대 초 철판·쇳덩이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여성 누드로 방향을 틀었고 40여 년 동안 이를 캔버스에 담아왔다. 여성의 뒷모습을 담은 그의 작품은 관능보다 모성에 가깝다. 이번 전시에서는 후기 작품 50여 점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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