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여성의 고통을 만날 때 [세상읽기]

한겨레 2024. 7. 2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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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밀양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장마와 스콜로 힘겨운 여름이 흐르고 있다. 하나 더 있다. 유튜브에서 만나는 여성의 고통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스콜처럼 갑자기 올라오는 영상, 갑자기 퍼지는 조회수, 예상 없는 재현, 현실과 신체에 닥쳐오는 위협. 온라인에서의 기후이변이자 재난 같다.

지난달 1일부터 20년 전 발생했던 밀양 청소년집단성폭력 사건 가해자 신상공개라는 ‘프로젝트’가 어느 유튜버에 의해 시작됐다. 해당 채널은 6월4일 하루 만에 15만2천명, 일주일 새에 50만명이 넘는 구독자가 생겨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지연된 정의를 구현하겠다’며 나선 사이버 레커들과 그에 환호하는 구독자들이 만든 판은 성폭력 사건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집단성폭력을 묘사하는 이미지를 남발했고, 피해자가 원치 않는데도 판결문을 읽어내려가며, 과거 영상들을 ‘끌올’했다. 두달이 지나고 있는 지금 신상이 공개된 가해자 중 일부가 우리도 피해자 신상을 공개하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에서 ‘사적 수사’가 오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떤 수사든 처벌이든 피해자의 고통을 완화하고 일상 회복을 도우려면 절차와 과정, 종결이 예측 가능해야 함에도 유튜브 세계에서는 언제 시작될지, 어떻게 뒤집힐지, 언제 끝날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알 수 없다.

지난 10일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는 유명 여성 유튜버의 불법촬영 피해 등의 내용과 이를 빌미로 한 사이버 레커들의 협박 사실을 피해자의 허락 없이 공개했다. 많은 언론과 시청자들의 분노가 협박범 채널을 향했다. 그런데 여성 먹방 유튜버를 협박하고 돈을 갈취한 사이버 레커뿐 아니라 이를 일방적으로 공개한 유튜버 역시 여성의 고통을 소재 삼아 조회수와 수익을 노린 채널이었다. 여성의 고통은 소재일 뿐이며, 피해자의 제보를 받아 어떤 사건의 진실을 추적한다고 해도 곧이어 다른 사안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공격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편에 선다. 사이버 레커들 사이의 폭로, 경쟁, 협잡 등은 사이버 레커 시장 자체를 키워오는 노이즈 마케팅이었다.

지난 8일에는 유튜브 열린공감티브이(TV)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위력성폭력 피해자를 음해하는 영상을 게재했다. 전 서울시장, 현 서울시장과 나란히 배치된 피해자의 얼굴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고, 정당한 절차를 거친 공무원 연수를 특혜인 것처럼 묘사하고, 스토킹 수준의 피해자 괴롭히기를 ‘취재’인 양 호도했다. 특정 정치인 지지자가 온라인에서 세력을 형성할 수 있지만, 정치인에 대한 추모와 기억 대신 4년이 지난 지금 젠더폭력 피해자를 괴롭혀가며 콘텐츠로 만들고, 현재 삶을 스토킹 수준으로 영상화했다. 타인의 고통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면서도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점에서 사이버 레커와 같은 문법이다.

지난 15일 유튜브코리아는 이번 여성 유튜버 협박·공갈로 고발당한 사이버 레커 세개 채널에 대해 수익화를 중단했다. 유튜브 커뮤니티 가이드는 ‘타인에게 해를 입히려고 했거나, 학대 또는 폭력에 가담하는 등 플랫폼 안팎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한 크리에이터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무수히 많은 한국 유튜브 채널에서 여성 연예인, 여성 정치인, 여성 유튜버, 여성 게이머, 여성 피해자를 사냥하고, 원치 않는 사생활을 추적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는데, 플랫폼 회사의 대응은 뒤늦기만 하다.

‘혐오범죄’, ‘여성혐오’, ‘혐오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대응이 높아져야 한다. 그런데 아직 먼 듯하다. 지난달 27일 유튜브에는 한 여성이 임신 36주차에 임신중지 수술을 받았다며 ‘지옥 같던 120시간’을 영상화했다. 후기 임신중지는 성폭력피해자 지원 현장에서도 위급하고 절실하게 대처하게 되지만, 의료자원은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살인죄’ 혐의를 두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경찰은 유튜버 신원 확인을 위해 미국 구글 본사에 압수수색 영장을 보냈다고 한다. 참 빠르다. 혐오범죄, 여성혐오 폭력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이 이렇게 발 빠르게 대응한 적이 있었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뒤 5년이 지난 지금도 임신중지 병원을 찾지 못해 헤매야 하는데, 지금껏 보건복지부가 이렇게 빠른 대응을 한 적이 있었나? 위기를 겪은 여성이 일상 회복을 하도록 돕는 곳이어야 하지 않나, 현실사회도, 온라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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