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김선달과 햇빛연금 [전국 프리즘]

정대하 기자 2024. 7. 2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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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안좌면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소. 신안군청 제공

정대하 | 전국부 선임기자

조선 후기 봉이 김선달은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 마치 자신이 대동강의 주인인 것처럼 속여 한양 상인에게 강물의 판매권을 매매했다. 강물을 팔아 혼자서 사적 이익을 취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는 강물을 공공재로 볼 정도로 경제적 안목이 뛰어났다. 전남 신안군의 정책은 햇빛과 바람으로 ‘수익’을 낸다는 점에서 봉이 김선달 방식과 닮았지만, 이익을 주민들이 공유하는 점이 다르다.

신안군은 주민들에게 햇빛연금을 준다. 1.8기가와트의 태양광발전 수익이 햇빛연금의 종잣돈이다. 영광 한빛원전 1기의 발전 설비 규모가 1기가와트라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한 규모다. 신안군 주민 1만여명(29%)이 분기별로 10만~68만원을 받는다. 현금은 아까워 잘 사용하지 않는 점을 고려해 지역상품권으로 지급한다. 햇빛연금 상품권이 미용실과 시장에서 소비되면서 ‘실핏줄 경제’가 돌아간다. 18살 미만의 어린이·청소년 2888명 모두에겐 올해부터 연 80만원의 햇빛아동수당을 준다.

신안군의 인구가 지난해 179명 늘었다.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에서 인구 증가는 기적적인 일이다. 주민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태양광발전 특수목적법인에 투자자로 참가해 지속해서 수익금을 배당받는다. 신안군의 도전은 햇빛에서 바람으로 이어진다. 내년부터 자은도에선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99메가와트)의 해상풍력발전소가 가동된다. 햇빛발전의 모델을 해상풍력에도 적용해 주민들에게 연 600만원씩의 연금을 주는 것이 신안군의 목표다.

신재생에너지 주민 이익 공유제는 기업 입장에서도 이익이다. 주민들이 반대하면 태양광이나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조성하기가 쉽지 않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 건설로 입는 주민 피해를 수익금 배당으로 보상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주민 이익 공유제와 기후 여건이 맞물리면서 전남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적지가 됐다. 전남은 햇빛 효율이 높고, 해양 수심이 20~30미터에 불과해 고정식 해양발전시설을 설치하기에 매우 좋다. 전남에서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해상풍력 단지는 총 52개(16기가와트)에 달한다.

문제는 송배전망 등 전력 계통이 포화 상태라는 데 있다.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나 전압을 높이고 낮추는 변전소만큼 중요한 것이 송전 시설이다. 그런데 육로 송전로 건설은 주민 반발이 심하다. 정부가 서해안 해저를 통해 호남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남북 종단 해저 전력고속도로 (서해안 HVDC) 사업에(2036년 준공 목표) 착수한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직류 고압 선로를 공해상으로 깔아 서울·경기로 끌어가기 위한 것이다.

정부와 기업 모두 발상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송전선로를 수도권까지 설치하는 데는 막대한 예산이 든다. 대기업들도 알이백(RE100,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하려면 재생에너지에 눈감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난 6월부터 시행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지역 재생에너지 사용에 눈을 돌리도록 하고 있다. 지역에 있는 공장이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할 경우 더 낮은 값에 공급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업들은 지역에 공장을 짓는 것을 꺼린다. 전기 먹는 ‘공룡’으로 알려진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는 대부분 수도권에 지으려고 하고 있다. 분산에너지법으로 계약 전력 50% 이상을 자가 발전하는 운전 계획을 제출해야 해 수도권에 짓기가 쉽지 않은데도 말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2029년까지 설립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새 데이터센터는 732곳이고, 이 가운데 수도권이 82%를 차지한다.

기업들에 전남의 재생에너지에 주목하길 권유한다. 전남 해남 기업도시에선 지난해 8월 12개 기관·기업이 데이터센터 설립을 위한 엠오유 협약을 체결했다. 2019년 준공한 태양광발전단지(98메가와트)가 있어서 가능했다. 정부도 발전소 인근 지역의 전기요금을 더 싸게 책정하는 차등요금제를 도입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에서 출발한 ‘산업분권’이 새로운 의미의 지역균형 발전 방책이 될 수 있다.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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