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자아의 사회 [김누리 칼럼]

한겨레 2024. 7. 2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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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엘리트가 대부분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졌다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단히 불길한 징조다. 파시즘으로 퇴락할 위험을 내장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조직의 불의 앞에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강한 자아를 가진 자가 사라진 사회는 파시즘의 문턱에 서 있는 사회다.
국민의힘 한동훈(왼쪽부터), 나경원, 윤상현, 원희룡 당대표 후보가 지난 17일 오후 경기 고양시 고양 소노 아레나에서 열린 제4차 전당대회, 서울·인천·경기·강원 합동연설회에서 각각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민주주의의 최대 적은 약한 자아다.”

요즘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는 말이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잔혹한 독재자가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약한 자아라고 했다. 한마디로, 자아가 약한 자들이 모인 공동체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아도르노의 지적은 한국 민주주의가 오늘날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원인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

먼저 지금 한창 떠들썩한 정치판을 둘러보자.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선 대통령에 대한 충성 경쟁이 가관이다. 채 상병 사망 사건과 명품 백 수수 의혹에서 보듯, 대통령의 초법적 국정운영과 그의 부인의 빈번한 부패 스캔들이 이미 상당 정도 드러났음에도 이를 비판하고 바로잡겠다는 후보는 찾아볼 수 없다. 모두가 충성을 맹세하느라 바쁘다. 한동훈 후보가 그나마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듯한 행보를 보인다지만, 지난 총선 과정에서 그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인 ‘폴더인사’의 기억을 국민은 잊을 수 없다. 사실상 여당의 모든 후보가 대통령의 ‘충복’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야당은 다른가. 민주당의 대표 경선은 아마도 해방 이후 치러진 당 경선 중 가장 맥빠진 선거일 것이다. 당을 완전히 장악한 이재명 대표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다. 한때 군사독재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던 86세대는 당대표 후보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퇴락했다. 들리는 건 오로지 당대표에 대한 낯부끄러운 찬양과 충성 맹세뿐이다. 민주주의의 활력이 사라진 민주당에선 이제 역사상 최초로 90% 당대표가 탄생할 조짐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 정치는 수십년 전으로 퇴행한 것으로 보인다. 군사독재 시대에도 이렇게 권력자에게 비루하게 굴신하는 정치는 없었다. 어찌 이리도 정치인의 자아가 약해졌는가. 정치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엘리트들 대다수가 ‘약한 자아’의 소유자이다. 의사들을 보라. 누가 보더라도 한국 의사들의 미성숙하고 오만한 태도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데도 내부에서는 어떤 반성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판사는 어떤가. 양승태 사법부가 저지른 사법농단이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제대로 처벌을 받은 판사는 단 한명도 없다. 게다가 양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하는 사법부의 뻔뻔스러운 행태에 국민은 할 말을 잃은 지 오래다. 검사는 다른가. 김학의 사건을 비롯해 검사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온전히 죗값을 물은 적이 있는가. 최고 권력자와 그 경쟁자에 대한 검찰의 노골적인 편파 수사에 국민의 분노가 폭발 직전에 있는데도 검찰 내부는 너무도 조용하다.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정치인이든 의사든 판사든 검사든,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불의한 행위에 대해 비판하고 나서는 자가 어찌 하나도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양심적인 정치인, 의사, 판사, 검사가 왜 없겠냐만, 그들은 어찌하여 침묵만 지키고 있는가. 내 기억으로는 한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고 하는 이 그룹에서 조직의 범죄적 행위에 따르기를 거부한 인물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을 폭로하고 법복을 벗은 이탄희 판사가 유일하다.

한국의 엘리트 집단에 이리도 의인이 귀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들 대다수가 권위주의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적 성격이란 권력을 가진 자에게 철저히 굴종하고, 자신이 권력을 가지면 타자를 가혹하게 굴종시키는 성향의 인간을 말한다. 한국의 엘리트 대다수가 권위주의적 성격의 소유자다. 에리히 프롬은 권위주의적 성격을 ‘사디마조히스틱 캐릭터’라고 불렀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가학적(사디스틱)이고, 자기보다 힘센 사람에게는 피학적(마조히스틱)인 성향을 보인다는 뜻이다.

권위주의적 성격은 파시스트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파시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권위주의적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들은 권력을 숭배하고, 약자를 혐오한다. 한국 엘리트가 대부분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졌다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단히 불길한 징조다. 한국 민주주의가 파시즘으로 퇴락할 위험을 내장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평판을 가진 스웨덴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는 최근 한국 사회의 독재화를 경고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한국 엘리트의 권위주의화이다. 독재화는 제도의 복원으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권위주의화는 인간의 변화를 통해서만 극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직의 불의 앞에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강한 자아를 가진 자가 사라진 사회는 파시즘의 문턱에 서 있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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