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왜 시사교양국서 시사를 제거하려 하나
최근 주요 방송사 전반에서 시사·교양 PD들이 일하는 조직에 ‘시사’라는 명칭을 떼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KBS는 제작1본부를 ‘교양다큐센터’로, 제작1본부 아래 시사교양1·2국을 ‘교양다큐국’으로 바꾸는 등의 조직개편을 추진하고 있고, SBS의 경우 지난 5월 기구개편에서 시사교양국을 ‘교양국’으로 재편했다. 이는 단순히 조직 이름이 바뀌는 차원을 넘어 PD 저널리즘으로 대표되는 시사 프로그램 제작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방송사 구성원의 우려가 나온다.
KBS 사측은 최근 조직개편 추진을 알리며 사장 직속 교양다큐센터 신설을 비롯해 제작1본부에서 제작하고 있는 시사 프로그램 ‘추적60분’을 보도본부로 이관한다고 통보했다. 기존 시사·교양 PD들의 주요 역할 중 하나인 ‘시사’를 배제하려는 사측의 시도에 “PD들의 저널리즘 역량을 박탈하고, 정치적·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아이템을 사전에 검열하려는 의도”라는 구성원의 비판이 나왔다. ‘직제규정 개정안’이 상정된 KBS 이사회를 하루 앞둔 16일 KBS PD협회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측의 추적60분 이관 시도를 규탄했고, 그에 앞서 지난 15일 제작1본부 소속 팀장 19명은 기명 성명을 내어 조직개편을 강행하면 보직을 사퇴하겠다는 결의를 밝힐 정도로 반대의 목소리는 높은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박민 사장 취임과 함께 KBS 시사프로그램들은 잇단 폐지 등 여러 수난을 겪어오고 있던 차였다. 박 사장 취임 바로 전날 생방송 시사 토크쇼 ‘더 라이브’는 방영 당일 편성 삭제에 이어 폐지로 이어졌고, 올해 초 경제와 국제 시사를 다루는 아침 프로그램 ‘해 볼만한 아침 M&W’도 폐지됐다. 세월호 10주기 편로 방영될 예정이었던 ‘다큐인사이트’도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불방된 일도 있었다.
“이번엔 ‘추적60분’이 위협받고 있다”고 PD들이 우려하는 이유다. ‘추적60분’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에 보도본부로 3년 간 옮겨진 적이 있다. 당시 보도본부 간부들은 데스킹 강화를 이유로 정권 비판적인 아이템을 발제 단계서부터 막고, ‘4대강 사업’ 편 등에 대해 방송 보류 결정을 내리는 등 제작 자율성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측은 노조 설명회 등에서 교양다큐센터 신설, ‘추적60분’ 보도본부 이관에 대해 ‘경쟁력, 공정성 강화’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 등 원론적 수준의 답변만 내놓은 것으로 알려진다.
A KBS 시사·교양 PD는 “시너지 효과를 위해서라고 하는데 기자들이 만드는 ‘더 보다’ ‘시사기획 창’ 등과 함께 국을 별도로 만드는 식의 전환을 하는 것도 아니”라며 “사실상 보도본부에 시사프로그램을 몰아넣어 시의성, 긴급성 있는 시사 아이템을 PD들이 다루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만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프로그램 성격이 어느 게 시사이고, 교양인지 불분명한 요소가 굉장히 많다”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유튜브에 실시간 라이브를 트는 것도 교양과 달리 시사성을 인정받는 프로그램만 가능한데 시사 분야를 빼버리면 이런 작은 것부터 제약을 걸기 시작할 거고, 크게는 다루는 내용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SBS는 지난 5월 조직개편에서 기존 시사교양국을 ‘교양국’으로 바꾸었지만, 이에 대한 PD들의 반대 목소리가 나오진 않고 있다. 조직 명칭만 달라졌을 뿐, 시사·교양 PD들이 제작하고 있는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대표적인 시사 프로그램 내용이나 방향성이 기존처럼 유지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SBS 노조는 당시 조직개편 설명 자리에서 사측이 시사교양국을 교양국으로 명칭을 바꾸는 데 대해 “시사가 빠지게 되면 시사 기능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했다.
조기호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은 “회사는 명칭의 직관화를 이유로 들었다. 그렇다면 시사 하나를 빼는 게 큰 차이가 있는 건지, 시사교양국이라는 프레임이 교양국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뀌는 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아 보인다는 우려를 전했다”면서 “그럼에도 사측은 교양국을 고수하며 조직개편을 시행했으니 이에 대한 외부 평가를 받아야 할 차례”라고 말했다.
B KBS 시사교양 PD는 “방송사마다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에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맥락도 다르게 인식될 거고, 미디어 환경 변화로 점차 시사 프로그램에 관한 소비층이 없어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세상에 널려 있는 문제들이 없어진 건 아니지 않나. PD들은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기자들이 놓친 부분을 짚어오기도 했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엄청난 사건이 있을 때마다 큰 능력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이어 “시사 프로그램은 예능, 드라마처럼 방송사에서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주는 화려한 주연은 아니지만 시청자에게 일종의 습관, 충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며 “그런 면에서 중요한 축인 ‘추적60분’이 날아가 버리면 그에 파생됐던 수많은 시사 프로그램들도 다 힘을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Copyright © 기자협회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경제지·일간지·방송·통신사 기자들의 '반도체 랩소디' - 한국기자협회
- 이진숙 탄핵심판 첫 변론… 위법 여부 공방 - 한국기자협회
- 사과 이유 설명 못하고, 마이크는 혼자 1시간40분 - 한국기자협회
- 답답해서 내가 던졌다… 윤 대통령에 돌직구 질문한 두 기자 - 한국기자협회
- 대구MBC 전·현직 48명, 임금피크제 최종 승소 - 한국기자협회
- 한국기자협회, 부회장 등 임원 3명 추가 인선 - 한국기자협회
- 상금 5000만원, AI 활용 여부 체크… 신춘문예도 시대 변화 반영 - 한국기자협회
- "경합주 돌며 시민 인터뷰… 그 때 이미 트럼프 당선 예상" - 한국기자협회
- '자사에 정정보도 청구' KBS 기자들, 사측 거부로 조정 불성립 - 한국기자협회
- "누구든 혼자가 될 수 있다는 보편적 이야기 담아" - 한국기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