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대교에서 2년째 음악으로 생의 희망 전합니다”

강성만 기자 2024. 7. 2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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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그래도, 라이브’ 공연 색소포니스트 이진우씨
이진우씨가 지난 9일 마포대교에서 트롬본 연주자(서울)와 협연하고 있다. ‘언라인드 뮤직’ 유튜브 갈무리

“마포대교에서 첫 연주를 했을 때죠. 무작정 연주를 시작해 3시간 넘게 색소폰을 혼자 불었어요.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죠. 해가 지고 마포대교를 걸어 주차장으로 돌아올 때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지더군요. 그 전에 수많은 연주를 하면서도 느껴 보지 못한 뿌듯함이었죠. 나를 위한 연주가 아니라 사회에 보탬이 되는 연주를 했다는 마음에서죠. 지난 마포대교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아요.”

재즈 색소포니스트 이진우(38)씨는 지난해 3월 이후 마포대교에서 ‘그래도, 라이브(LIVE)’라는 이름으로 24차례 공연을 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 재즈 기타리스트 박갑윤 등 다른 연주자와 춤꾼들을 매 공연에 한두명 초대해 함께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는 이 공연 영상을 계속 유튜브에 올렸고, 다음 달에는 재즈 싱글앨범 ‘그래도, 라이브(LIVE)-마포대교 블루스’도 낼 계획이다.

“서울의 다리 중 가장 많은 사람이 투신한다는 마포대교에서 삶을 버리기 위해 다리에 오른 이들에게 생의 희망을 주겠다는 취지로 공연을 시작했어요. 그래도 살자고요.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지난 19일 마포대교 근처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왜 색소폰이냐는 물음에 이진우씨는 이렇게 답했다. “들고 다니기 편하고 아무데서나 바로 불 수 있으니까요.” 강성만 선임기자
이진우씨가 지난해 10월 ‘그래도, 라이브’ 공연에서 댄서 김학수씨와 협연하고 있다. 언라인드뮤직 제공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마친 그는 17살에 록 음악을 배우러 무작정 영국으로 건너가 록 밴드 기타 주자로 활동했다. 이 시절 우연히 재즈 앨범을 듣고 이 장르의 매력에 빠진 그는 음악 행로를 바꿔 다시 미국으로 재즈 유학을 떠났다. 뉴욕 뉴스쿨(학사)과 뉴올리언스 대학(석사)에서 정통 재즈를 공부했고 재즈 색소포니스트 웨스 웜대디와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이름난 재즈 교육가인 엘리스 마살리스의 가르침을 받았다. 두 장의 재즈 정규앨범 ‘커프스 버튼(Cuffs Button)’(2013)과 ‘위드 오이타 브라더스(With Oita Brothers)’(2017)도 냈다.

그가 마포대교에 오른 것은 “음악인으로서 사회를 위해 어떤 보탬이 될 것인가” 숙고의 결과였다. “한 사람의 뮤지션으로서 내가 사회를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할 무렵 유독 마포대교에서 투신자가 많다는 통계를 봤어요. 그걸 보고 이틀 뒤 바로 색소폰을 들고 마포대교에 올랐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고 마음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바라면서요.”

서울 다리 중 투신자 최다란 말에
색소폰 들고 ‘마포대교 연주’ 시작
동료 연주자들과 지금껏 24회 공연
“자살 아닌 예술의 명소 되었으면”

피아니스트 임현정과 ‘신청음 콘서트’
관객이 제시한 음으로 즉흥 연주
내달 광주, 10월 서울 공연 예정

왜 자살 문제냐고 하자 그는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은 이상하고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에게 제 음악으로 삶의 힘을 전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저도 그렇고 누구나 다 그런 고통의 시간을 겪을 수 있어요.”

왜 음악가가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느냐는 물음에는 7년간 일본 활동을 마치고 4년 전 귀국했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는 코로나로 연주 활동이 몹시 위축되었던 시절이다. “귀국하니 무대가 없어 연주자들이 쿠팡 배달을 하고 대리운전을 한다는 말이 들리더군요. 기타 같은 현악기는 마스크를 쓰고 연주할 수 있었지만 저는 그럴 수도 없어 클럽들이 더 기피했어요. 그때 비로소 재즈 바깥의 세계가 보였어요. 시야가 넓어졌죠. 그동안 경주마처럼 음악만 보고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라이브’에서 함께한 20여 명 연주자는 대부분 그의 음악 동료들이다. “뮤지션들은 대개 ‘기브 앤 테이크’(주고받기) 방식으로 다른 연주자 공연에 나옵니다. ‘그래도, 라이브’도 그런 방식이죠. 수레에 앰프나 촬영 장비를 싣고 다리를 오르면서 초청 연주자에게 마포대교 투신 현황이나 투신 시도 때문에 플라스틱 다리 난관이 부서졌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자살 문제에 관심이 없던 뮤지션들도 관심을 보이더군요.”

그가 공연하던 지난해 7월8일에는 두 사람이나 투신하는 일이 있었단다. “한 분은 공연을 준비할 때였고 다른 분은 어둑한 무렵 연주 중이었어요. 공연을 하던 인도 맞은편이었죠.” 그때 처음 든 생각은 “무력감”이었단다. “제가 백날 연주해봐야 의미가 없구나 생각했죠. 그러다, 제가 다리 난관에서 뛰려는 사람 발목을 잡고 말릴 때 그분이 왜 살아야 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지, 그런 질문이 들었어요. 그 답을 지금도 찾는 중이지만 현재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포대교에 처음 오를 때는 사계절만 겪으리라 생각했다는 그는 1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이런 희망도 가지고 있다. “마포대교가 자살이 아니라 예술의 명소가 되면 좋겠어요. 다리 끝에서 끝까지 예술가들이 떡 서서 예술 활동을 펼치는 곳 말이죠. 여기서 죽음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가 올해 공들이는 프로젝트가 하나 더 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과 듀오로 하는 신청음 콘서트다. 관객이 자유롭게 한 소절 음을 제시하면 이를 토대로 두 사람이 즉흥연주를 하는 공연이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음악 프로젝트란다.

지난 6월 경기 고양 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첫 공연을 했고 내달 18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10월4일 서울 엘지아트센터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임현정씨의 아이디어였어요. 장기 프로젝트로 이어갈 생각입니다. 이 공연들로 특정 음악 장르의 팬들뿐만이 아닌 보다 많은 사람에게 즉흥음악의 가능성과 감동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임현정·이진우 듀오가 즉흥 연주를 하고 있다. 다나기획사 제공

왜 즉흥연주냐고 하자 그는 지난 6월 공연에서 교감한 한 관객의 반응을 들려주었다. “나이가 있는 남성 관객분이 음을 제시했는데요. 잘 안 들려 다시 부탁했어요. 그런데 음이 전과 달랐어요. 그걸 한 차례 더 반복했는데요. 그분이 많이 쑥스러워 하시더군요. 그때 연주하면서 세상에 틀린 음도 없고, 틀린 인생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공연 뒤 그분이 우리에게 와서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시더군요.”

그는 즉흥연주의 매력을 두고 “우리가 짠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게 아니라 관객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관객과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감정이 음악이 되는 거죠. 사실 공연을 위해 전날 연습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평생 성실하게 쌓아온 음악성이 공연 중 나오는 거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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