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민기 빈소에서 [연예기자24시]

성정은 스타투데이 기자(sje@mkinternet.com) 2024. 7. 2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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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에 놓인 영정 사진 속 김민기 대표는 특유의 미소로 조문객들을 맞았다. 제공|학전
잠시 망설였지만 고(故) 김민기 학전 대표의 빈소에 다녀오길 잘했습니다. 참 잘 고른 영정 사진 속 그는 특유의 하회탈 같은 사람 좋은 미소로 조문객들을 맞고 있었습니다. 취재를 떠나 존경하는 어른의 빈소를 23일 오후에 찾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에는 조문객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마침 유족이 입관식을 하러 간 참이라 조카 분이 홀로 빈소를 지키고 있더군요. 국화꽃을 한 송이 올리고 명복을 빌고 짧게 얘기를 나눴습니다. 갑작스레 상태가 나빠지셨다고 안타까워했고, 장지가 천안이라 물어보니 가족묘원이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명복을 빌며 빈소를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벽면에 각계 각층에서 보내온 조화의 리본이 쭉 붙어 있는 것 외에 한다하는 이들의 빈소에 즐비한 근조화환은 돌려보내고 있었고, 빈소 안과 입구의 국화꽃에도 일절 리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의금은 받지 않았고 방명록에는 저마다의 마음을 적을 수 있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한데 한편으론 마음이 따뜻해지는 빈소였습니다. 고인이 남긴 것에 비해 작은 빈소와 소박한 풍경이 너무나 김민기스러웠습니다. 보고 계시다면, 끄덕끄덕 할 듯한 정겨운 소박함이랄까요. 전날 조카인 학전 김성민 총무팀장이 “선생님은 배우 설경구, 장현성 씨가 와도 ‘밥은 먹었냐’고 하실 분”이라며 “(평소 성격을 미뤄)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조의금과 조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낮이라 그런지 대중문화계 유명인들은 보이지 않았고 몇몇 정치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밥은 먹었냐”고 물으실 것 같아 자리를 옮겼습니다. 비 오는 날 밥과 맑은 소고기뭇국을 먹으며 곳곳에서 고인을 추억하고 있었습니다. 게중에 오랜 친구라는 또래 분은 “얼굴이나 한번 보여주고 가지”라며 못내 서운해 하셨고, ‘아침이슬’과 ‘지하철 1호선’으로 고인을 기억하는 일반인 조문객들도 식사하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데 어쩜 이리 또 소박하고 따뜻한지요. 아마 고인이 딱 마음에 들어할 그런 빈소의 모습이었습니다.

33년간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이끈 김민기 대표. 따뜻한 미소, 수수한 차림이 트레이드마크였다. 제공|학전
김민기 이름 석자를 기억하는 방식은 세대간에 조금 다를 겁니다. 중장년층이라면 “긴 밤 지새우고”로 시작하는 ‘아침이슬’과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로 시작하는 ‘상록수’와 함께 청춘을 보냈을 테고, 보다 젊은 이들은 ‘지하철 1호선’이나 ‘고추장 떡볶이’ 등 대학로 소극장 학전에서 뮤지컬이나 어린이극을 본 추억으로 그를 기억하겠네요.

누군가 떠나고 나면 저마다 고인에 대한 기억이 다를 터인데, 기자가 본 김민기 대표는 “여태 만난 취재원 중 가장 한결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공연 담당 시절 처음 인터뷰를 하러 가니 맥주나 한잔 하자며 늘 가던 단골집에 앉아 진짜 맥주 한잔 하던 기억이 선합니다.

초면에, 낮술에, 이야기는 두서없이 흘러갔고, 그는 특유의 눈이 없어지고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미소와 역시 특유의, 눈빛은 은근히 날카로운데 무표정한 듯한 표정을 오갔습니다. 당시 일, 직장과 관련된 정체성에 방황하던 저는 그의 한마디에 “헉”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데, 촌철살인의 눈을 가진 느낌이었달까요. 이후 요즘 말로 하면 츤데레 같은 김 대표의 사람 잘 챙기고, 따뜻한 인간미를 더 많이 접했습니다만 허허 웃음 속에 세상에 대한 통찰이 느껴질 때면 ‘아 이 사람 김민기지’ 싶기도 했습니다.

그가 대학로를 굳세게 지키던 시절 외국의 대형 뮤지컬이 라이선스로 한국에서 본격 상연되면서 공연 시장은 급변했습니다. 대형 뮤지컬이 관객들과 돈을 휩쓸어가고 대학로 소극장에 찬바람이 쌩쌩 불어닥쳤을 때, 공연인들이 그에게 “선생님도 저런 뮤지컬하세요” “이제 돈 좀 버셔도 되잖아요”라고 하면 또 그는 특유의 허허 웃음과 함께 “나같은 사람도 있어야지”라고 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렇게 한결같이 좋은 공연을 선보이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 배우들과 스태프를 챙겨주며 33년 간 ‘학전’을 이끌어왔습니다. 절친한 분들과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한 번도 “나 김민기야” 나 “아침이슬 알지?”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고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가수 조영남은 단 두 사람, 시인 이상과 김민기 대표를 ‘천재’라고 인정했는데 진짜 천재는 이렇게 젠체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빛나게 해주고 기꺼이 ‘뒷것’을 자처하며 겸손한가 싶습니다.

사람은 다 조금씩, 혹은 많이 변해갑니다. 인기의 부침에 울고 웃는 문화계에서는 그 변화가 더 많고 급격합니다. 그렇다보니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최고의 덕목이자 칭찬으로 쓰이는데 김민기 대표는 그냥 그렇게 태어난 사람 같습니다.

예술적으로 천재이고, 천재인데다 사람과 세상을 살피는 인간애가 있고, 천재라서 그런가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상록수를 닮은 단단한 심지가 있고,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천재 티를 내지 않다가 떠난 사람. 그렇게 오래오래 기억될 겁니다. 내일은 발인인데 하늘도 그만 슬퍼하고 날이 좋아 편히 가시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인사 전합니다.

“김민기 선생님, 선생님과 맥주 한 잔 너무 영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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