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칼럼] 트럼프 `시즌2`, 각자도생의 시대

강현철 2024. 7. 2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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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논설실장

조 바이든(81) 미국 대통령이 11월 대선을 106일 앞둔 지난 21일(현지시간)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전격 사퇴하면서 미 대선판이 요동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지한 카멀라 해리스(59)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78) 전 대통령은 최초의 흑인 여성 민주당 후보와 경쟁해야 한다. 자메이카계 아버지와 인도 출신 어머니를 둔 해리스 부통령은 여성과 흑인들의 지지도가 높다.

이번 미 대선은 미중 간 전략경쟁의 격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병합 시도 등 자유민주주의 국제질서가 권위주의 국가들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는 가운데 치러진다. 세계는 숨죽이고 있다. 미 대권을 누가 손에 쥐느냐에 따라 국제질서와 국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후보가 돼 당선될 경우 바이든 행정부와 정책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세계질서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해리스의 경제정책은 '바이드노믹스'보다 더 진보적으로 부자 증세, 법인세율 21%에서 35%로 인상, 서민층에 대한 지원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문제는 시장 예측대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다.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미 우선주의)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앞세운 트럼프 '시즌2'는 '시즌1'보다 더 고립적인 외교안보와 경제 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각국이 스스로 생존의 길을 찾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본격화하며, 대한민국의 경제안보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게 확실하다.

트럼프의 정책방향은 집권 1기 인사들이 참여한 '리더십지침 2025'와 트럼프 캠프가 직접 만든 '아젠다 47'에 잘 나타나 있다. 외교안보 정책은 '스트롱맨들의 브로맨스'다. 트럼프는 전당대회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나는 북한 김정은과 아주 잘 어울렸다"며 "핵무기를 많이 가진 사람과 잘 지내면 좋은 일"이라고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해선 "똑똑하고 강한 지도자"라고 추켜세우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서도 우호적이다. 반면 유럽과 한국, 일본 등 전통적 동맹국에 대해선 방위비 인상 등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을 패싱해 미북 양자협상을 통해 북 핵무기를 용인하고, 중국의 대만 병합에 눈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제 정책도 "미국만 잘살면 된다"로 요약된다. 대표적인 게 이웃 국가를 거지로 만드는 '근린궁핍화정책'(beggar-my-neighbor policy)이다. 트럼프는 평균 3.3%인 현 관세율을 10%까지 끌어올리는 '보편적 기본관세'를 도입하고, 중국산에 대해선 60~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근린궁핍화정책은 1930년 대공황기 후버 대통령 시절 제정된 '스무트-홀리 관세법'(The Smoot-Hawley Tariff Act of 1930)의 쌍둥이다. 수입 상품에 대한 관세율을 올려 외국 제품의 수입을 막고, 미국 기업과 농어업을 보호하자는 것이었다. 1929년 하반기 40.1%였던 평균 관세율은 47.1%로 올랐으며, 최고관세율은 무려 400%로 인상됐다. 하지만 결과는 법안 제정 의도와는 정반대였다. 무역상대국들도 보복 조치를 취해 무역 급감을 초래, '자유교역의 이득'이 사라짐으로써 경제는 뒷걸음질치고 대공황은 심화됐다. 트럼프의 관세 인상도 세계교역 위축을 야기하고, 미국내 물가만 상승시킬 것이다.

미국의 힘이 약화되면서 세계는 지금 '투키디데스 함정'과 '킨들버거 함정'이라는 이중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말한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은 신흥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이미 미중 간에는 세계패권을 둘러싼 이런 성격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은 미국의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에서 유래한 용어로, 새롭게 부상한 국가가 기존 패권국을 대신해 국제 공공재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할 때 위기가 발생하는 상황을 말한다. 킨들버거는 1930년대 대공황의 원인을 국제 공공재를 공급할 리더십의 부재에서 찾았다. 트럼프가 '세계의 경찰'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유지할 국제 공공재를 더이상 공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2년 5개월째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최대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수십만명의 희생에도 불구, 영토 일부를 내주고 대한민국처럼 분단될 처지가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미국이 관세를 올리면 대미(對美) 무역흑자가 역대급으로 불어난 한국도 타격이다. 보편적 기본관세 적용시 우리 수출은 최대 241억달러 줄어들고, GDP(국내총생산)는 0.31% 감소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전기차, 이차전지 등 대미 흑자를 많이 내고 미 정부로부터 미국내 공장 건설 보조금을 받는 업종이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가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의 개정도 주장하고 있어 멕시코를 통한 대미 우회수출도 타격을 받게 된다.

북중러의 위협이 더 커지고, 미국의 경제안보 정책이 바뀌어 미국과의 동맹은 약화되면 대한민국의 생존 카드는 과연 무엇일까? 1950년대 한반도를 방어 대상에서 제외해 6·25전쟁을 야기한 '애치슨 라인'처럼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경우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이처럼 엄중한 상황에서 필부(匹夫)도 나라가 걱정인데 우물안 개구리의 정치권은 구한말 닮은 국제질서의 격변이나 민생은 안중에도 없고, 연일 정쟁뿐이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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