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합병 논란에 재부상한 '이사충실의무'
"기업 M&A, 일반주주 이익 침해 횡행…상법 고쳐야"
"이사충실의무 너무 포괄적"…다른 대안 제시도 나와
두산그룹이 추진 중인 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 합병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현행 법상으로는 소액주주가 일방적인 기업 인수합병(M&A)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배주주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으로부터 소액주주를 보호할 수단이 따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를 포함하는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거듭 제기되고 있다. 다만 상법 개정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두산 합병논란에 소액주주 '속수무책' 지적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상혁, 강준현, 강훈식, 김남근, 이정문, 유동수, 민병덕, 오기형 의원실은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밸류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남우 한국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최근 상장사를 보면 진정성을 가지고 밸류업을 해야하는데 여전히 그룹 차원에서 지배주주가 일반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400만 일반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사회 충실 의무 관련 상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혁 의원은 두산그룹 합병 사례를 언급하며 "두산이 외국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따로 개최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일반투자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고, 어떤 피해를 받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라며 "정부는 다양한 감세 정책을 얘기하고 있지만 과연 제대로 된 밸류업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두산그룹은 최근 두산에너빌리티의 핵심 자회사 두산밥캣을 인적분할해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편을 발표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상훈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 합병을 거론하며 "적자기업(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두겠다는 것은 컵의 내용물을 섞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이 교수는 "컵이 망가진 건 아니기 때문에 회사의 손해로 볼 수 없지만, 주주는 원치않은 내용물을 먹어야하고 지분율도 확 줄어 버린다"며 "자본시장법으로는 속수무책인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특히 두산밥캣의 주가가 하락하고 있을 때 합병이 발표됐다는 점에 주목하며 "총수는 합병을 어떻게 할지 혼자 알고 있다가 주가가 내려오면 그때 결정한다"며 "시장참가자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SK그룹의 SK이노베이션과 SKE&S 합병 역시 지배주주 이익만 고려한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SK 일반주주 입장에서는 SK온(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의 적자를 메워줘야 하니 손해"라며 "결국 회사가 유상증자를 해도 되지만 돈은 쓰기 싫으니 일반주주의 돈으로 합병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SK엔텀과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처럼 좋은 회사를 SK온에 합병하는 것도 결국 SK온의 사이즈를 키우는 작업"이라며 "나중에 SK온이 상장한다면 SK이노베이션 주주입장에선 2차가해를 당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화그룹 총수일가가 소유한 한화에너지가 그룹 지주회사 ㈜한화 주식을 공개매수하는 것을 두고도 "대주주가 현금을 받아서 주식을 산다면 공시가 되기 때문에 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며 "그러나 공개매수는 주가를 묶어놓고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때 이사회에서 중립이 돼서 주가가 너무 저렴하고 자기거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러한 사례를 비추어봤을 때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상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M&A 기법은 수백, 수천가지이고 법인은 기업의 자본을 건드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합병을 할 수 있다"라며 "본질은 이사의 충실의무 도입"이라고 강조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지난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관련 "시장의 우려를 알고 있다"며 "제도적으로 고칠 부분이 있는지 보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상법 개정 외에 다른 방법도 열어둬야"
한편 이날 토론회 참석자 일부는 이사의 충실의무 도입 취지에는 전반적으로 공감했지만 상법 개정이 아닌 다른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남근 의원은 "금융위원장 후보도 인정하다시피 일본 밸류업에서는 감세정책 같은 건 없었고 일본 밸류업 정책에서 가장 핵심적이었던 건 지배구조 개선"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방법론적으로는 (이사 충실의무 강화를) 상법 개정로 해야하느냐 고민은 있다"며 "상장회사에 대해서는 상장회사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특례법을 신설하거나,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는 방법으로 접근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토론 패널로 참석한 손창완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와의 이해관계의 충돌이 기업집단을 전제로 한 우리나라 회사지배구조체제에서 실제로 존재하고, 이로 인한 문제제기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충실의무 도입의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사의 주주에 대한 간접적인 주주이익보호의무를 입법화하는 방안, 합병과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에 한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직접적인 이익보호 의무를 인정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다른 패널인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사 충실 의무의 대상에 주주가 포함될 경우 '주주의 손해에 대해서도 업무상 배임죄의 대상이 되는 것 아닌가'하는 경제계의 우려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주주들이 제대로 보호받게 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주주들에게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임에 대한 논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지현 (jihyun100@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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