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전기차 어렵다며 말릴 때 …"독자기술로 돌파" 혁신 물꼬

문광민 기자(door@mk.co.kr), 박소라 기자(park.sora@mk.co.kr), 박제완 기자(greenpea94@mk.co.kr) 2024. 7. 2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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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1억대 질주 ② 정의선 결단의 리더십
현대차 R&D조직 직접 설득
발빠른 전동화 전략 결실
세계 '올해의 車' 잇단 수상
경쟁사들 전기차 투자 미뤄도
美공장 가동 앞당겨 10월 양산

◆ 현대차 1억대 질주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22년 10월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카운티에서 열린 전기차 신공장(HMGMA) 기공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지난해 10월 촬영된 현대차그룹 HMGMA 건설 현장. 현대차그룹

"우리는 전기차로 넘어가야 합니다.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전동화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당시 부회장)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했다. 그는 리튬·니켈 등 핵심 광물 가격 안정화, 보조금 정책이 종료되는 시점의 경쟁 구도, 수요 정체기 이후의 전기차 대중화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숫자와 시나리오를 언급하며 좌중을 설득했다. 8년 전 열린 임원 회의 자리에서였다.

당시 회의에 배석했던 한 임원은 "당시까지만 해도 전기차는 수익성이 없는 '시기상조 사업'으로 여겨졌다"며 "전체 자동차 판매량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했다는 점도 전기차 회의론의 근거로 통했다"고 말했다. 현대차·기아 연구개발(R&D) 거점인 남양연구소 엔지니어조차 전기차는 주행거리가 짧아 단기간에 내연기관차를 대체하는 이동수단이 되기 어렵다고 봤다.

태동하는 전기차 시장에서 신생 기업인 테슬라가 치고 나가는 모습을 정 회장은 예의 주시했다. 이전까지 로드스터, 모델S, 모델X 등 고가 전기차를 팔았던 테슬라는 2016년 들어 보급형 차종인 모델3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현대차그룹의 최신 전기차였던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1회 충전 주행거리가 191㎞에 그친 반면 테슬라 모델3는 360㎞ 이상을 기록했다. 변화를 서두르지 않는다면 현대차그룹은 '추격자(fast follower)' 신세에 머물러야 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기아 R&D 사령탑을 맡고 있던 양웅철 전 부회장을 찾았다. 남양연구소에 전기차 산업의 미래를 집중 조사하는 별도 조직이 꾸려졌다. 결론은 명확했다. '현대차그룹 독자 기술로 전기차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 정 회장의 설득은 결국 현대차·기아 국내 R&D 인력 1만2000여 명을 움직였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무서운 속도로 전동화를 추진했다. 내연기관차 중심으로 짜여 있던 R&D 조직이 전동화 중심 체제로 전환됐다. 기존 내연기관 모델에 모터, 배터리를 집어넣은 개량형 전기차 대신, 전용 플랫폼을 활용한 전기차 신모델 개발을 가속화했다. 2019년에 선보인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현대차그룹의 발 빠른 전동화 전략은 결실을 맺고 있다. 최근 3년간 열린 글로벌 3대 '올해의 차' 시상에서 현대차그룹은 총 30개 상 가운데 13개를 수상하며 완성차 그룹 기준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도요타가 3개를 수상하는 데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현대차그룹이 수상한 13개 차종 모두 전기차 였다. 전기차 분야에서 시장 선도자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현대차·기아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기대치도 높아지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쌓아 올린 '품질 경영'의 토대 위에서 정 회장은 현대차·기아의 위상을 '선도자(first mover)'로 격상시켰다.

양 전 부회장은 "정 회장은 현대차의 기술력을 믿었다. 자동차 산업에 혁신의 바람이 불 때, 정 회장에게는 우리가 앞으로 밀고 나가도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며 "그 결과 전동화라는 마라톤에서 현대차그룹은 후발주자들이 따라잡기 버거울 만큼 앞서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하루에도 8개 안팎의 미팅을 잡으며 각계각층 인사를 만나는 총수로도 유명하다. 그는 다방면으로 이해도가 높으면서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T자형' 경영인을 추구한다. 자동차 산업이 더 이상 완성차라는 한정된 영역에 머물지 않고 정보통신기술(ICT)을 비롯해 예술, 건축, 로보틱스 등 다양한 업종과 융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이야기를 듣고 소화해내는 정 회장의 판단과 결정에 더욱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정 회장은 필요할 때 각 계열사 사장뿐만 아니라 전무, 상무 등 실무급 임원들과도 이메일로 편히 일대일 소통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현대차 고위 임원은 "정 회장은 해외 공장에 출장을 올 때면 주재원들의 가족까지 초청해 식사를 대접할 정도로 소탈하고 격의 없는 오너"라면서 "일 외적인 부분에서 불필요한 의전이나 비효율을 지양하는 실무형 경영인"이라고 말했다.

[문광민 기자 / 박소라 기자 / 박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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