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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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책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지식인이 아닌 것처럼 보일까 염려되었고, 이 책을 읽어야 정의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평판이 생길 것 같아서, 정의에 관하여 무언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덮은 지 몇 년 만에 그러한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 신기했고 스스로의 아둔함에 놀라웠지만 지금까지 그 결론은 정의에 관한 '나'의 '정답'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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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책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유행이라는 단어를 써서 미안한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유행'했던 것은 맞다.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지식인이 아닌 것처럼 보일까 염려되었고, 이 책을 읽어야 정의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평판이 생길 것 같아서, 정의에 관하여 무언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정의의 기준은 무엇일까' '최소한 무엇인가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직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단서들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어디선가 언젠가 들었거나 읽었던 것 같은 에피소드가 거듭되면서 고뇌를 가중하는 혼란은 더해졌고, 보검처럼 얻고자 했던 단서를 구하는 것은 기다림으로 변했다. 마지막 에피소드가 끝나 책을 덮으면서 생각해보니 다 알 만한 에피소드만 가득할 뿐 찾고자 했던 정의의 단서는 없고, 고민만 가득한데 그러한 고민을 널리 전파하는구나 싶어 약간은 허탈했다.
그 책에 나왔던 에피소드의 내용들이 기억에서 거의 사라질 즈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의는 과정이구나." 그 책은 바로 '과정'을 말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어떠한 것이 '정의'인지는 누구나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중 '정답'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은 지 몇 년 만에 그러한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 신기했고 스스로의 아둔함에 놀라웠지만 지금까지 그 결론은 정의에 관한 '나'의 '정답'이 되어 있다.
결과적 정의를 구했다고 하는 것은 삶에 정답이 있다고 단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삶에 정답이 있다고 믿고 지냈던 시절이 있기는 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면서 우리도 후손에게 잘사는 나라를 물려주자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밤잠을 설치고 조국 근대화를 위해 죽기 살기로 일하던 시절,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외치며 교도소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시절 말이다. 그 계몽주의적 시절!
그때는 민주화, 국민소득 1000달러, 선진국 같은 명확한 목표가 제안되었고 사회구성원들은 세뇌된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그러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된 '근면, 성실, 면학'에 따랐다. 그때는 분명 '정답'이 있었다.
이제 삶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결과적 정의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과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주장을 듣고 논거를 숙고하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건의하고 검토하고 또 건의하는 과정이 '정의'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고 하여 필경 결론이 한 가지로 모아지는 것은 쉽지 않으니 마지막에는 다수결에 따르거나 결정권자의 의지가 관철되는 수밖에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다.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고 번잡하며 심리적인 그리고 육체적인 체력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때 부담하여야 할 비용에 비하면 꽤 경제적이다.
간혹 과단성 있게 나폴레옹처럼 '나를 따르라'고 하면서 '선한 결론'을 제시한 후 믿고 따라오라고 하다가 크고 작은 대가를 치르는 분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미 인터넷과 스마트폰, 아니 AI폰이 만들어준 우리가 살고 있는 정보 평준화 시대에는 이런 계몽가적 방향 제시는 어울리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으며 궁극적으로는 공정하지도 못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한 개인의 판단력과 자제력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기에는 이미 너무 복잡해져 있기 때문이다.
[문무일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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