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로 이름날렸던 독립운동가···유홍준 “김가진이라는 근대 위인 바로 알리고자”
동농 김가진(1846~1922)은 항일독립운동단체 조선민족대동단을 조직했고, 상하이 임시정부의 고민으로 항일투쟁을 했던 독립운동가였다. 대한제국의 대신으로 74세의 노구를 이끌고 상하이로 망명했다. 아들(김의한), 며느리(정정화), 손자(김자동)까지 3대가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동안 김가진은 독립운동가로서 알려졌지만 당대 명필로도 이름을 날렸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서예가로서 그의 면모를 재조명하는 서예전 ‘백운서경(白雲書境)’이 열린다. 김가진의 최초 서예전으로, 기획과 총감독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맡았다.
23일 예술의전당에서 전시 개막을 기념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 전 청장은 “김가진의 서예전으로 꾸며졌지만 김가진이라는 근대의 위인을 세상에 널리 올바로 알리자는 뜻도 있다”고 말헸다.
김가진은 어릴때부터 서예에 심취해 한국과 중국의 역대 명서가들의 글씨를 두루 학습했다. 50대 후반 송나라 미불, 명나라 동기창, 조선의 원교 이광사 서풍을 토대로 자신만의 ‘동농체’ 행서·초서 서풍을 완성한다. 유 전 청장은 “당시는 추사체나 중국의 하소기, 유용 같은 청나라 서풍이 유행하던 시기였지만 그는 이를 따르지 않았고 ‘글씨의 생동감과 활력, 자연스러움’을 중시했다”고 소개했다.
창덕궁에 그가 쓴 글씨가 다수 걸려있으며, 독립문의 편액 글씨도 김가진이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독립문 글씨를 쓴 사람이 이완용이라는 설도 있지만 유 전 청장은 “필법 등으로 볼 때 김가진이 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시에선 창덕궁 편액을 비롯해 유명 사찰의 현판과 간찰, 직접 지은 한시 등 200여 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명 백운서경(白雲書境)은 백운동 골짜기에 백운장(白雲莊)이라는 집을 짓고 스스로 백운동주인(白雲洞主人)이라고 한 일화에서 따왔다. 백운동 골짜기 암벽에는 김가진이 쓴 ‘백운동천(白雲洞天)’ 글씨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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