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 기증자는 알까? DNA 정보가 세계에 공개된 것을 [오철우의 과학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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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HeLa) 세포는 생물의학 연구에 널리 쓰이는 대표적인 인간 세포다.
헬라 세포를 사용한 연구논문은 백신, 암, 바이러스, 약물 연구를 비롯해 모두 11만건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2013년에는 헬라 세포의 게놈(유전체)을 해독한 논문이 발표됐다가 유전자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과 랙스 유족의 항의로 철회되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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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헬라(HeLa) 세포는 생물의학 연구에 널리 쓰이는 대표적인 인간 세포다. “불멸의 세포”라고 불릴 정도로 증식 능력이 뛰어나, 70여년 동안 실험실에서 계속 배양되며 사용되고 있다. 헬라 세포를 사용한 연구논문은 백신, 암, 바이러스, 약물 연구를 비롯해 모두 11만건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많은 과학 발견이 헬라 세포를 통해 이뤄졌다.
헬라 세포의 주인이 1951년 대학병원에서 자궁경부암으로 숨진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당시 31살)라는 사실은 2010년에야 뒤늦게 한 과학작가의 추적으로 밝혀졌다(‘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랙스의 세포가 기증 동의도 없이 유족도 모르는 채 쓰여왔음이 알려지면서 상당한 파장이 뒤따랐다. 2013년에는 헬라 세포의 게놈(유전체)을 해독한 논문이 발표됐다가 유전자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과 랙스 유족의 항의로 철회되는 일도 있었다. 이후 과학계와 유족 간에 협의가 이뤄져왔다. 헬라 세포 사례는 과학계와 윤리학계에 생체 유래 물질의 소유권과 기증 동의에 관해 여러 주제의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생체 유래 물질의 기증 동의와 관련한 논란이 ‘20세기 최대의 생물의학 연구사업’으로 불리는 인간게놈프로젝트(HGP)를 두고서도 제기됐다. 최근 미국의 비영리 과학저널리즘 매체인 ‘언다크’는 탐사취재를 거쳐 인간 게놈 지도 작성 당시에 기증 동의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상황을 자세히 보도했다. 보도를 보면, 인간게놈프로젝트 연구진은 애초에 여러 기증자의 게놈 조각을 이어 붙여 누구의 게놈인지 식별하기 어렵게 하는 방식으로 인간 게놈 지도를 완성하고자 했다. 기증 동의서에는 기증자의 디엔에이 정보가 게놈 지도에 10% 미만으로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렇게 남녀 10명씩 모두 20명한테서 혈액을 기증받았다.
하지만 약속은 동의서 문구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연구진의 이메일 자료를 보면, 1998년 무렵 연구 전략에 큰 변화가 생겼다. 여러 게놈을 이어 붙이는 작업이 기술적으로 복잡한데다, 경쟁 그룹인 크레이그 벤터 연구진이 게놈 지도를 먼저 완성할지 모른다는 점을 의식해 연구 일정을 단축해야 한다는 견해가 커진 상황이었다.
인간게놈프로젝트와 기관윤리위원회(IRB)는 당시 해독 작업이 많이 이뤄진 익명의 게놈(RP11로 불렸다)을 중심으로 게놈 지도를 완성하자는 수정된 연구 전략을 승인했고, 결국에 RP11 한 사람의 게놈이 74%가량을 차지하는 게놈 지도가 만들어졌다. 기증된 게놈 정보 대부분이 기증자도 모른 채 인간 게놈 지도의 참조표준으로 공개되어 널리 사용됐다. ‘언다크’의 보도에서 생명윤리학자들은 연구자가 동의서에서 약속하고 그 약속을 어기는 일은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RP11 사례의 파장은 헬라 세포와 달리 당장 크지는 않은 듯하다. RP11의 익명성은 여전히 유지되고, 또한 지금은 더 많은 인간 게놈 지도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역사적인 연구사업이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과학연구의 신뢰와 연구윤리에 소홀했다는 점은 부끄러운 한 장면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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