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어 김범수 낚은 이복현의 금감원 특사경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갈 염려가 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카카오 창업주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이유다. 김 위원장은 23일 오전 1시쯤 SM엔터테인먼트(SM엔터) 시세 조종 혐의로 구속됐다. 신기술 기업가 중 감옥살이를 하게 된 것은 김 위원장이 처음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필두로 한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한국 벤처 신화'로 불리는 기업 수장의 덜미를 잡았다. 이를 남부지방법원이 마무리하면서 확실한 성과물을 만들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2월. 하이브가 금감원에 투서를 넣어 SM엔터 주가가 급등한 이유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카카오가 경쟁자였던 본인들을 따돌리기 위해 SM엔터 주식을 단기간에 대량 매입했다는 내용이다. 금감원 특사경은 이 원장의 지시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해 11월 특사경은 김 위원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 송치했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과 금융당국이 수사는 밤낮 없었다.
그리고 1년 5개월 만에 김 위원장이 구속됐다. 앞서 그는 속내를 밝히지 않았다. 전일 오후 영장 심사를 받기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시세 조종 혐의를 인정하나', '어떻게 소명할 예정인가' 등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변하지 않았다.
법조계에 따르면 4시간가량 이어진 영장심사에서 장대규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 부장검사는 200여장에 달하는 자료를 준비했다. 검찰은 1000쪽 분량의 의견서를 법원에 사전 제출했다. 모두 김 위원장이 SM엔터 주식 대량 매입 계획을 미리 보고 받고 승인 했다는 혐의를 입증하는 자료다. 김 위원장의 구속에 사활을 걸었던 셈이다.
이번 구속으로 특사경은 확실한 결과물을 얻었다. 대기업 정조준에 성공한 것이다. 특사경은 주가조작(시세조종), 미공개정보 이용 등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범죄 수사를 목적으로 지난 2019년 7월 출범했다. 압수수색, 통신조회 등 강제수사 권한이 특징이다. 이 원장이 금감원 수장을 맡기 직전에 특사경 수사 인력과 직무범위가 확대됐다. 투자자보호에 대한 시대적 요청이 거세지면서 금감원 역량을 이곳에 집중시킨 것이다.
이 원장이 합류하면서 특사경은 날개를 달았다. 업계에서는 이번 특사경의 수사도 이 원장의 스타일이 다분히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원장은 검사로 임관한 지난 2003년부터 서울지검 남부지청에서 일을 시작했다. 남부지검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다음으로 크다.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 양천구, 강서구 등 서울 남서부의 5개구를 관할하고 있다. 증권사가 위치한 여의도(영등포구)가 수사범위에 포함된다. 이 원장이 몸담았던 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여의도 저승사자'로도 불린다.
이 원장은 검사시절에도 증권, 금융 관련 수사를 도맡아왔다. 회계사시험과 사법시험을 모두 패스한 이력이 배경이 됐다. 이 원장은 검사 임용 4년만인 2006년 대검 중수부로 차출돼 현대자동차, 론스타 등 굵직한 경제범죄 수사에 합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로 재직할 당시 현대차 비자금,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수사의 실무를 맡았는데, 이때 이 원장은 수사팀에 합류해 호흡을 맞췄다. 검사 시절 축적된 엄정 수사 방식과 본인만의 원칙이 카카오 수뇌부의 퇴로마저 차단한 것이다.
카카오는 2006년 창사 이래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다. 일각에선 카카오가 정부에 미운털이 박힌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정도다. 김 위원장이 카카오에서 CA협의체 공동의장과 경영쇄신위원장까지 맡은 상황에서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법원의 영장발부 근거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신인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은 지난 수십 년 간 뇌물이나 기타 혐의로 기업 총수들을 유죄 판결하고 수감해 왔다"면서 "김 위원장은 신기술 기업가 중 최초로 구속된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김경렬기자 iam1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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